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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소녀의 가슴 뛰는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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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웃음·서정적 감성으로 그려내
제작 기간 11년 10만장 작화 작업
70년대 시대상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
모녀가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특히 1970년대를 지나온 40대 여성이 60∼70대가 된 어머니와 10대 중후반의 딸, 이렇게 3대를 이루어 같이 보면 공감대를 더욱 넓힐 수 있다.

모든 것이 순수했던 시절,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18살 소녀 오이랑에게 찾아온 가슴 뛰는 첫사랑을 명랑한 웃음과 서정적인 감성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달리기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 육상선수를 꿈꾸었지만 계주에서 처음으로 상대에게 추월당하자 이랑은 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넘어진다. 그 뒤 육상부 선생님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이랑은 지는 것이 두려워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이랑은 서울에서 온 전학생 수민을 레코드 가게에서 만나 친구가 된다. 수민은 얼굴도 예쁘고 어른스러워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랑은 항상 자신감 넘치는 수민을 보면서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영화 ‘러브스토리’의 라이언 오닐 같은 첫사랑 상대를 꿈꾸고 있지만 정작 이랑에게 찾아온 상대는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인 괴짜기질 다분한 같은 학교 남학생 철수다. 자신의 발명품이 가득한 아지트에 데려가고, 저녁 무렵 집까지 찾아와 수리한 라디오를 두고 가는 철수에게 생전 처음 설렘을 느낀다. 하지만 수민과 함께 있을 때 철수를 만나게 되고, 예쁜 수민 앞에서 몹시 긴장하는 철수를 보면서 ‘나는 그저 친구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시간적 배경은 1970년대 말.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과 섬세한 작화작업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실사영화보다 더 디테일하게 재현해냈다. 아침 조회 때 교장선생님 연설을 듣던 중 쓰러지는 학생, 교련시간 응급처지 실습, 수업 중 선생님 몰래 쪽지 건네기, 분필 가루 가득 머금은 칠판 지우개 털기, 당시 유행어처럼 쓰던 “가자! 치타.”, 레코드 가게에서 고르던 ‘산울림’ 테이프, ‘불란서제과’에서 먹는 소보로빵, TV화면 속 원더우먼과 전 국민을 울리던 드라마 ‘여로’의 장욱제와 태현실, 새마을 달력, 극장에서 라이언 오닐 주연의 ‘러브 스토리’ 관람, 동네 방앗간의 가래떡 뽑는 모습, 소독 방역차, 카세트라디오를 고쳐주던 동네 전파사, 김일의 프로레슬링과 개발붐을 타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철거 소식 등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그때로 돌아가고픈 충동이 일게 한다.

‘관객의 마음에 다가가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했던 안재훈, 한혜진 두 감독은 뜻을 함께한 스태프와 함께 기획부터 개봉까지 11년의 제작기간 동안 총 10만장의 작화작업을 거쳐 이 영화를 완성해냈다. ‘소중한 날의 꿈’은 유려하고 사실감 넘치는 비주얼을 선사하는 한편 CG작업을 최소화한 수작업 그림을 통해 할리우드 3D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가장 애니메이션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작진은 사실감 넘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영화 속 배경에도 정성을 쏟았다. 1970∼80년대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을 찾아내 주변의 풍경을 담아냈다. 이랑과 철수가 우산을 주고받으며 서로 호감을 확인하던 철길은 실제 마을 사이로 기차가 다녀 유명해진 군산의 철길 마을이다.

이랑의 학교는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주의 기전여고, 첫 데이트 장소이자 철수의 아지트가 있는 달동네 마을은 서울 이화동, 마라톤 장소는 춘천의 실제 마라톤 코스, 이랑의 집은 옛날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공주시의 시골집과 천안 아우내장터 방앗간 등을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영화는 철수의 아지트가 있던 달동네가 철거되는 대목부터 흐름의 물살이 빨라진다. 이랑과 철수가 공룡발자국을 찾아 땅끝마을로 가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랑의 눈앞에 펼쳐진 판타지 장면에서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어린 공룡에게 “뭐 해? 달려. 같이 가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외침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랑은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완주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인생은 곧 마라톤 같은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끝부분 이랑의 바람이 귓가에 남는다.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땀들이 뒤에서 나를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