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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
이른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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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한산성 수어장대-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
오늘도 어제의 그 모습 그대로 남한산성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영욕이 교차했던 남한산성을 떠올리니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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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험한 산세를 잘 활용한 성벽모습 |
인적이 드문 길을 천천히 걸어 정상에 오르니 희미한 안개로 가려진 서울의 모습이 저 멀리 북한산까지 보여 과연 이곳이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산성이라는 생각이 와 닿는다. 천지가 개벽한 현재의 서울을 병자호란을 겪은 이곳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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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본 서울전경 멀리 북한산인수봉이 보인다. |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 산성으로 신라 문무왕 때 지은 옛터에 쌓은 성으로 1624년 인조2년에 축성하여 1626년에 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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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암문(暗門) - 인조 15년 1637년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으로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
남한지(南漢志)에는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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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매바위-남한산성 동남쪽 축조를 맡았던 이회가 공사기일을 완공하지 못해 음해를 받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자 그가 절명하는 순간 매 한마리가 날아와 이 바위에 앉아 슬피 울다가 없어져 매바위라 한다. |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으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현재의 송파구 삼전동부근)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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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병암남성신수비(屛岩南城新修碑) -선조들의 건축실명제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이다. 정조3년 1779년까지 약 50여 일간에 걸쳐 수어사 서명응의 지휘아래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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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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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병자호란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곳의 전투를 ‘법화골 전투’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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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남한산성 비석군 - 성내의 비석 30기를 한곳으로 모아 놓은 곳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상규등의 비석들이 있다. |
윤석하 (사진작가)
2908y@naver.com
사진 원본은
http://www.beautia.co.kr/
(昔河사진문화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