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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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자치구 공무원들 한 표 행사 ‘눈치’

참여 여부에 정치성향 드러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참여 대 불참으로 사실상 공개투표가 되면서 직장인과 서울시·자치구 공무원들이 고민에 빠졌다. 참가 여부만으로 정치적 의사가 드러나 직장 상사나 단체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등포구 집에서 강남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김인철(40)씨는 주민투표일인 24일에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날 작정이다. 김씨는 23일 “회사에 티를 내지 않으려면 새벽에 나가서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성윤(39)씨도 지각이라도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 걱정하고 있다. 최씨는 “회사에서는 투표권을 보장한다지만 마음이 그다지 편치 않아 상황을 봐가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투표소에 들렀다가 출근하겠다는 소신파 직장인도 적지 않다. 여의도 직장인 윤지연(33·여)씨는 “무상급식 문제가 정치적 놀잇감이 된 상황이 안타깝다. 무상급식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해보고 한 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자치구 공무원들의 고민은 더욱 크다.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는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에 배수진을 친 상황이라 적어도 투표장에 갔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김모(36)씨는 “시청에는 보는 눈이 많아 설령 투표를 하기 싫어도 늦게 출근하거나 공가를 내는 등 처신을 잘 해야 한다는 충고가 오간다”고 귀띔했다.

자치구 공무원들은 단체장이 전면 무상급식에 찬성 입장인 민주당 소속이냐, 반대 입장인 한나라당 소속이냐에 따라 엇갈린다. 현재 25개 자치구 중 민주당 소속 구청장인 19명,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은 5명이다. 이제학 양천구청장은 최근 대법원 판결로 구청장직을 잃었다.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인 서초·강남·송파·중랑·중구의 공무원들은 서울시 공무원들과 비슷한 처지다. 나머지 자치구 공무원들은 주민투표를 하고 싶어도 티를 내서는 안 된다. 특히 일부 민주당 소속 구청장은 최근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무상급식을 추진한다고 밝힐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다. 한 직원은 “무상급식 투표 한번 때문에 단체장이나 측근들한테 찍혔다간 앞으로 공직생활에 애로사항이 적지 않을 것 같아 무척 조심스럽다”며 “‘눈치보기 투표’가 된 주민투표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