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단독] 홍보물 훼손해도 처벌 못하는 주민투표법

60대 현수막 철거… 처벌규정 없어
선거관련 현수막을 훼손했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 정답은 선거법상 ‘예스’, 주민투표법상 ‘노’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23일 경찰이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길가에 걸린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 현수막을 훼손한 혐의로 주모(63)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주씨는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 사거리에서 민주당 서울시당에서 설치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관련 현수막을 떼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훼손한 현수막에는 ‘편가르는 나쁜투표 거부하자’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찰 조사에서 주씨는 “투표해서 찬반을 가리면 되지 왜 주민투표 자체를 못하게 반대하느냐”며 “길 가다 홧김에 뜯어버렸다”고 진술했다.

주씨를 입건하고 사건을 종결지으려던 경찰은 뜻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처벌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행 주민투표법 제28조(벌칙)는 ‘투표인에 대하여 폭행·협박 또는 불법으로 체포·감금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투표의 자유를 방해한 자’(2항), ‘주민투표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4항) 등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관련 현수막 훼손에 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반면 공직선거법 제240조(벽보, 그 밖의 선전시설 등에 대한 방해죄)는 ‘정당한 사유 없이 벽보·현수막 기타 선전시설의 작성·게시 또는 설치를 방해하거나 이를 훼손·철거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주민투표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려고 했으나 처벌할 근거가 없어 지금으로서는 단순 ‘재물손괴죄’로 입건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법의 모호함을 인정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행 주민투표법은 투표 운동을 폭넓게 허용하다 보니 처벌 규정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현재는 주민투표를 관리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투표가 끝나면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