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33·가명)씨에게 2008년 10월20일은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 같은 날이다. 당시 20대의 꿈 많던 이씨는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현장에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에서 지내던 이씨는 그날 오전 8시쯤 “불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엔 연기가 자욱했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연기 속에서 흐릿한 사내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내는 손에 든 흉기로 이씨를 사정없이 찔렀다. 이씨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범인은 고시원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씨 말고도 12명을 더 공격해 6명이 죽었다. 이씨는 지금도 환청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그래서 본때를 보려주려 했다.” 범인이 사건을 일으킨 동기는 단순했다. ‘묻지마 범죄’였다.
아무런 이유없이 행해지는 묻지마 범죄가 줄지 않고 있다.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대책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다. 정신질환 같은 병에 의한 것도 있지만 최근엔 ‘현실불만’의 탈출구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살인, 방화, 강도, 강간) 가운데 현실불만이 동기가 되어 발생한 사건이 2001∼2007년에는 200∼250건을 오갔으나 2008년 436건, 2009년 453건, 2010년 371건으로 증가했다. 현실불만이 이유인 폭행 사건도 2001년 409건에서 2010년 1702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크고 작은 ‘화풀이성 범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취업난·경제난 등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패닉 상태에 놓이게 되면 분풀이 대상으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고 말한다. 정신질환자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와 달리 현실불만이 원인이 된 범죄는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관 정연대 경장은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수사력을 키워 막을 수 있고 정신질환자는 치료를 할 수 있지만 현실불만에 따른 범죄는 해결이 어렵다”며 “소외 계층이 울분을 가지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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