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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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인터뷰] 이승기 “‘더킹’ 동강 행군신, 오싹한 경험”

 

“이재하 만큼 버라이어티한 감정 선을 가진 왕이 또 있을까요?”

배우 이승기는 ‘더킹 투하츠(이하 더킹)’ 이재하 캐릭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극중 이재하처럼 복잡다단한 인물은 근래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항아(하지원 분)와 순탄치 않은 로맨스는 물론이거니와 클럽M 봉구(윤제문 분)의 음모로 형을 잃고, 여동생은 하반신 마비가 됐다. 친구는 총 맞아 죽고, 엄마는 납치당한다. 숱한 파란을 겪으며 재하는 철부지 왕자에서 국가의 안위를 챙기는 국왕으로 성장한다.

이승기는 극단을 오가는 감정 선을 연기하는 고통마저도 “스트레스”라는 애드립으로 되받을 만큼 드라마에 푹 빠져있었다. 이른 아침 서울 강남 모 카페에서 만난 이승기는 ‘더킹’ 이재하가 성장한 것처럼 ‘배우’로서도 훌쩍 커진 모습이었다.

◆ 시청률 잃었지만 얻은 게 더 많아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과 여운이 많이 남아요. 촬영장에서 포옹으로 인사한 건 처음이었죠. 배우들, 감독, 스태프 할 것 없이 웃으면서 농담도 많이 하면서 친해졌어요. 무엇보다 스스로 많이 배웠어요. 연기에 대한 벽이 하나 깨진 기분이에요. 제가 ‘이렇게 안 힘든 드라마 처음’이라고 했더니 스태프들이 식겁하더군요. ‘이렇게 힘든 현장 처음’이라면서요. 현장이 힘들지 않았던 건 힘 빼는 연기를 터득했다는 의미 아닐까요.”

‘더킹’은 방송3사 수목극 대전에서 선두로 출발했으나 결국 경쟁작에 밀리며 뒷심 발휘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승기는 시청률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성장으로 얻은 ‘여유’라는 부산물이다. 

“첫 방송 시청률이 잘 나왔는데 이후로는 완전 하락세였죠. 그동안 시청률이 항상 대박친 건 아니었지만 이번처럼 중간에 떨어진 건 처음이었어요. 이 좋은 스태프로 성적이 안 좋으니 ‘내 탓인가’라고 자책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주제 자체가 익숙지 않고 즐기면서 보기 어려운데다 집중해서 봐야하는 드라마라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시청률을 떠나 60부에서도 배울 수 없는 걸 배웠다는 점이 뿌듯해요.”

이재하 캐릭터를 해석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고. 이른바 ‘똘끼’ 있는 왕, 재하가 굵직한 사건과 마주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감정 폭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재하가 실존했다면 스트레스 받아 죽었어야 마땅해요. 이재하 인생이 스트레스 덩어리라 ‘스트레스’라는 애드립도 나온 거예요. 자칫 비호감으로 비춰질 수 있는 재하의 감정선이 도입부에서 길어졌는데 이 또한 표현하기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만큼 힘든 감정을 소화하다보니 나중에 해낼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 하지원·윤제문…연기베테랑과 붙으니 ‘자극’

‘더킹’ 타이틀롤,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기대의 시선에 부응해야 한다는 점이 이승기로서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승기는 하지원, 이순재, 윤제문 등 쟁쟁한 선배 배우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보다 값진 경험치를 얻었노라 털어놨다.

“하지원 누나는 제가 아니라 어떤 분과 해도 잘 맞으실 거예요. 배우들은 으레 자신이 메인인 장면과 아닌 장면에서 체력 안배를 하는데 하지원 누나는 모든 장면에서 똑같이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체력이 좋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누나가 열심히 하니까 저도 따라가게 됐어요.”

이승기는 “타이틀롤이라 내가 무너지면 잘 될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촬영을 시작한 2월 한 달간은 연기 잘하는 선배 배우와 붙다보니 정말 힘들었다”고 촬영 초반 어려움을 떠올렸다.

이승기가 찾아낸 해법은 ‘정면 돌파’였다. 그는 “선배 배우들에 비해 연기 갭과 실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무조건 가르쳐 달라고 했다”고 당시 마음가짐을 전했다.

“첫 회 촬영할 때는 대사를 달달 외워 갔는데도 한 마디도 안 나왔어요. 너무 진짜처럼 연기하시니 황당하더라고요. 10회 즈음 판문점 신과 윤제문 선배와 독대 신을 찍으면서부터 이전의 긴장이 많이 풀렸어요. 특히 윤제문 선배가 독대 신에서 오가는 감정을 많이 받아주며 몰입하게 해주셨어요. 윤제문 선배한테 안 밀렸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전 선배님을 따라갔을 뿐이에요. 연기 잘하는 배우의 호흡만 받아주면 잘해 보이는 장점이 화면으로 드러난 거죠.” 

이승기는 극중 클럽M 봉구와 그간의 사건을 되짚는 독대 신에서 윤제문의 카리스마에 밀리지 않는 평을 받은 바 있다.

◆ 동강 행군 신, 오싹한 경험

항아와 꿈속에서 재회하며 열 번 넘게 눈물을 쏟아도, ‘여명의 눈동자’를 방불케 했던 수용소 신을 찍고도 지치지 않았다는 이승기가 체력적으로 힘든 장면을 고백했다.   

동강에서 60km 행군하는 장면이다. 이승기는 당시 힘들었던 경험과 함께 오싹했던 기억도 아울러 전했다.

“4회 동강 신이 유독 힘들었어요. 몸도 아프고 죽겠더라고요. 그날 첫 신이었는데 스태프들도 힘들어 했죠. 너무 추운데다 시간도 늦어져서 결국 밤을 샜는데도 한 장면밖에 못 찍었는데 날이 밝은 뒤 보니 주변이 다 무덤이더라고요. 이상하게 편집실에서도 그 장면이 에러나서 힘들었대요. 다들 ‘귀신 씌었던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어요.” 
 

◆ 어른들 예쁨 받는 비결 있었네!

이승기는 젊은 층은 물론 폭넓은 연령대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 유명하다. 연예계에서도 이는 다르지 않다. 이승기 소속사 관계자에 따르면 촬영 기간 동안 이승기 대기실에는 이순재, 윤여정 등 원로배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이승기는 “어른들께 일단 잘 한다”며 까마득한 선배들의 사랑 받는 비결을 털어놨다.    

“이순재, 윤여정 선배님께는 체력이 걱정돼서 약도 지어 드렸어요. 특히 윤여정 선배님은 ‘넝굴당’과 ‘더킹’에 출연하시고 여배우라 더 힘들 것 같았어요. ‘넝굴당’에서는 출연 분량이 많고, ‘더킹’에선 분량이 적더라도 대기시간이 길어서 힘들 수밖에 없잖아요. 연기호흡이 좋아지고부터 더 예뻐해 주셨어요.”

“이순재 선배님은 어떻게 저 연세에 그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나 놀라워요. 잠을 거의 안 주무신대요.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데 처음 듣는 얘기는 거의 없고 거의 세 번 이상씩은 들었었죠. 선배님 절반의 라이프를 다 들은 기분이에요.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도 만나자고 하셨어요. 선배님과 열 작품 이상 더 해보고 싶어요.”  

◆ 예능·가수·연기 다 하고픈데…

이승기는 지난 1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다. 일본에서 데뷔 싱글 ‘연애시대’를 발표한 지 3개월 만에 콘서트로 일본 팬들을 찾은 것. 이승기는 3월 일본 데뷔 싱글 발표 후 갑자기 ‘더킹’ 출연이 결정되면서 일본 활동을 미뤄야 했다.

그럼에도 부도칸 공연장 관람석은 빼곡히 채워졌고, 이에 이승기는 당시 감격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일본에서 활동도 안했는데 부도칸 공연장에 8000명 넘는 팬들이 찾아줬어요. 부도칸 공연장 잡는 일이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괜히 질러놓은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득 메워주셔서 고마웠어요. 평소 팬이던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로부터 손 편지와 사인 책도 선물 받았어요. 요시모토 바나나가 예전 제가 출연한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보고 팬이 됐다고 하시더군요.”

가수로 데뷔한 이승기는 예능과 연기 모든 영역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모든 분야를 영리하게 개척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본업이 뭔지 헷갈릴 정도다. 

이승기는 “예전엔 가수가 연기하면 욕도 많이 먹었지만 이제는 연기 진출이 당연해졌고, 평가 또한 배우와 동등하게 받는다”며 “이젠 가수가 예능까지 장악하는 시대가 됐으니 멀티플레이어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승기는 ‘1박2일’ ‘강심장’에서 탁월한 예능감을 발휘하며 다양한 연령대에 어필했다.  이에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승기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이승기 또한 예능 복귀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쉴 틈 없는 스케줄에 호흡이 긴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고심에 고심을 요하는 선택이다.

“예능은 시작만큼 끝내는 타이밍을 잡기 가장 힘든 만큼 출연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아요. 예능도 하고 싶고, 가수로서 무대에도 서야하고, 연기도 해야 하는데 빡세요(웃음). 연말 콘서트 준비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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