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아에서 거장 반열에 오른 김기덕
김 감독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대변하는 말이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운 그는 한글맞춤법도 서툰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해 3년 만에 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강렬한 이미지와 독창적 상상력으로 주목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친 폭력과 엽기행각, 여성에 대한 가학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식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농업학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15살 때부터 서울 청계천과 구로공단의 공장에서 일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20대가 되자 해병대에 입대해 5년 만에 부사관으로 제대한다. 30살에 화가가 되려는 일념으로 무작정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32살에 프랑스에서 본 영화 ‘양들의 침묵’과 ‘퐁뇌프의 연인들’이었다. 영화란 미디어를 처음 접한 그는 곧 푹 빠져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시나리오작가협회 교육원에 다니며 시나리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1996년 ‘악어’를 내놓으며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08년에는 자신이 직접 쓰고 제자인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의 흥행으로 잠시 전기를 맞는 듯했다. 그러나 장 감독이 대형 투자배급사와 손을 잡으며 그를 떠나고, 같은 해 ‘비몽’ 촬영 도중 배우 이나영이 죽을 위험을 넘기자 농촌 오두막에서 3년간 은둔에 들어갔다.
그는 2011년 ‘아리랑’이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으며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이어 18번째 작품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을 받아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세계 수준에 오른 한국영화
국내 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 도전 반세기 만에 최고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영화는 1956년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제7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처음 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았다.
피에타의 수상은 한국 영화가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김 감독 외에 이창동·박찬욱 감독도 국제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작품성은 물론 상업적 측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올해 9월 초 현재 한국 영화는 7396만명의 누적 관객을 동원하며 관객 점유율 56%를 기록하고 있다. 김동호(75)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은 “김 감독의 수상으로 한국 영화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됐다”며 “한국영화에 힘찬 도약의 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송은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