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신뢰가 쌓이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대규모 남북 경협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선거 직전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악재가 터졌다. 그런 만큼 박 당선인으로서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아야 하는 동시에 대결적인 남북관계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새누리당 외교통일추진단 추진위원으로 박 당선인 측의 대북 정책 수립에 관여한 최대석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20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공약만 강조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남북 간에 다양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었지만 대화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향후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은 있을까. 최 원장은 “북한이 유세기간 박 후보에게 대북정책과 관련한 공개질의장을 던진 것을 보면 북한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북한이 박 당선인에게는 이명박 정부에처럼 적대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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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특별열차 공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1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 안에 전시된 김 위원장이 생전에 타던 특별열차를 둘러보고 있다.(윗사진) 조선중앙TV는 19일 김 위원장이 지방 현지지도 및 중국·러시아 방문 때 애용한 특별열차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
이러한 상황 판단이 ‘이심전심’일지 ‘동상이몽’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박 당선인과 북한 간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의외의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당선인이 20세였던 1972년 7월4일 당시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으로 하여금 북한 박성철 부총리를 접촉하도록 했다. 이 비밀접촉으로 탄생한 것이 남북교류 합의의 이정표인 ‘7·4 남북공동성명’이다. 박 당선인으로서는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02년 5월에는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 선대에 합의한 7·4 남북공동성명의 의미를 되새기며 평화통일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선대의 연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이 된 셈이다. 당시 박 당선인은 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의 생사 확인, 금강산댐 공동조사, 북한 축구국가대표팀 초청 등 남북 간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문제는 북한과 관련한 박 당선인의 개인적 ‘트라우마’ 극복 여부다. 박 당선인은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재일 한국인으로 요시이 유키오라는 이름의 일본 여권을 가진 문세광의 총탄에 저격당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김민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