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과장 등에 따르면 수서서는 대통령 선거 전인 지난해 12월13일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의 컴퓨터 2대(노트북·데스크톱)를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팀에 분석 의뢰했다. 야당 고발장 등을 토대로 김씨 혐의와 관련된 78개 키워드도 선정해 넘겼다.
그러나 권 과장은 “그쪽(서울청)에서 ‘이러면 신속한 수사가 어렵다’며 수를 줄여 다시 건네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수서서는 이에 따라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키워드를 4개로 줄여 같은 달 16일 서울청에 전달했다. 하지만 키워드 목록을 전달받은 서울청은 이날 밤 11시쯤 기습적으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댓글 흔적이 없다”는 분석 결과를 내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권 과장은 “분석 결과를 보고 정확한 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수사팀은 그제야 속았다는 느낌에 망연자실했다”면서 “상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18대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을 받은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오른쪽)씨가 지난 1월25일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변호인과 함께 경찰서를 나서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권 과장은 김씨의 대선 관련 인터넷 게시글에서 ‘특정 정당과 관련한 패턴(경향성)’이 엿보인다고 언론에 밝혔다가 윗선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권 과장은 수사 도중 송파서 수사과장으로 전보발령됐다. 권 과장은 사시 43회로 2005년 ‘여성 최초 사법고시 경정 특채’로 경찰에 입문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청은 “수서서에서 애초 의뢰한 키워드는 100개였다”며 “이 가운데 일부는 대선과 관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핵심 키워드 4개만 선정한 것이지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날 경찰에서 넘겨받은 수사 기록과 증거 자료 세부 검토에 들어갔다. 검찰은 경찰의 기록에 구애받지 않고 수사 계획을 다시 짠다는 방침이어서 전면 재수사 수준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기록 검토가 끝나는 대로 국정원 직원들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출국금지 상태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소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잘잘못을 가려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검찰은 대통령 눈치 보지 말고 국정원 압력에 굴하지도 말며 법상식에 맞게 수사하라. 원 전 원장 구속수사가 첫 번째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국정조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유태영·오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