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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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 개성공단 단전·단수 검토…치열한 '치킨게임'

정부의 개성공단 단전·단수 문제가 개성공단 폐쇄 여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개성공단은 남한도 북한도 ‘공단 폐쇄’에 대한 언급만 하지 않고 있을 뿐, 29일로 공단운영이 잠정 중단된 지 20일을 넘겨 ‘잠정 폐쇄’나 다름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개성공단 운명 가를 문산변전소 정부가 대북 송전 중단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29일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 문산변전소 송전탑 옆 신호등에 빨간불이 커져 악화일로의 개성공단 상황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부는 문산변전소를 통해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사태 향방 가를 단전·단수 문제

공단 체류 인원 50명 전원이 귀환한 이후의 상황은 예측 불허다. 남한은 개성공단에 대한 단전·단수 카드, 북한은 남측 자산 동결·몰수 조치 등의 강수를 손에 쥐고 서로를 견제하는 형국이다. 밤늦도록 협상한 끝에 43명만 이날 귀환하고 7명은 당분간 잔류하게 됨에 따라 이들의 귀환 시점에 정부의 단전·단수 여부가 주목된다.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라도 단전·단수 조치는 언제든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전·단수 조치가 이뤄지는 순간 공장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조치는 사실상 ‘공단 폐쇄’를 의미한다. 정부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엽적 문제지만 공단 폐쇄와 이에 따른 피해 보상 책임을 놓고 정부와 입주기업 간 소송전이 벌어질 수 있다.

단전·단수 조치가 이뤄지면 만성적 전력난과 생활용수 부족에 시달려온 개성시는 그야말로 극심한 전력난과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으로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북한이 남한 인원의 마지막 잔류인원 귀환이 예정됐던 29일 정부의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철수 조치를 ‘파렴치한 망동’으로 비난하면서 사태악화 시 ‘최종적이며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며 위협한 배경에는 이런 속사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은 “엄혹한 조건에서도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명줄을 걸고 있는 남측 기업의 처지를 고려해 남측 인원들에 대한 강제추방과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폐쇄와 같은 중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기존의 다른 기관 주장을 되풀이했다.
◆북한, 개성공단 군사지역 전환 카드 들고 협박

북한이 얘기하는 최종적 중대조치는 공단의 완전 폐쇄 선언으로,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전환시켜 공단 조성 전의 상황으로 되돌릴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앞서 27일 ‘개성공업지구 폐쇄’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내주었던 개성공업지구의 넓은 지역을 군사지역으로 다시 차지하고 남진의 진격로가 활짝 열려 조국통일 대전에 더 유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은 2003년 12월 개성공단 착공 이후 개성과 판문점 인근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62포병여단을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로 재배치했다.

남북 간 긴장의 완충지대이자 남북경협의 유일한 끈인 개성공단이 이런 식으로 ‘정리’되면 남북관계는 ‘파탄’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개성공단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라는 남북 간 군사충돌 상황에서도 정상 가동됐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성역’이자 남북 모두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심리적 ‘레드 라인’으로 간주해왔던 게 사실이다. 개성공단을 매개로 미약하나마 남북 당국 간 의사소통이 간접적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공단 폐쇄의 정치적 파장은 매우 클 전망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에 따른 유엔의 대북 제재로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도 원활하지 않아 민간 채널을 통한 소통과 교류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상황이어서 개성공단 ‘잠정 폐쇄’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충격파는 훨씬 강력하다.

전직 고위 통일부 관료는 “북한이 마지막으로 귀환하는 인원의 입경 승인을 밤늦도록 지연시킨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남한 인원이 모두 철수한 이후의 단전·단수 조치를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료는 “남측 잔류 인원이 다 빠져나오면 단전·단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공단은 사실상 폐쇄 수순으로 넘어가는 것이어서 북한은 이러한 상황 전개를 바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개성공단 운영에 대한 남북 양측 당국의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 양상이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