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시간이 똑같이 흘러가는 건 아니다. 끔찍하게 지루한 순간에는 시간이 더디 가고, 정신없이 바쁜 날에는 시간이 휙휙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정말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에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이렇듯 경험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다시 말해 카이로스는 일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인 셈.
LED 빛을 통해 도시의 일상적인 시간(크로노스)을 특별한 순간(카이로스)으로 바꾸어 놓는 작가 문지연(34)의 개인전이 열린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도시의 고요한 실루엣은 적막하고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캔버스 안쪽에 설치한 LED 빛이 켜지면 도시는 완전히 달라진다. 버튼 하나로 전깃줄이 뒤엉킨 전신주는 푸른 나무로 바뀌고, 무채색 도시는 태양을 머금은 자연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인적 없는 외로운 도시가 코끼리·사슴·원숭이 등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엉뚱한 곳으로 바뀌기도 한다. 도시가 감추고 있었던 아름다움이 작가의 상상력과 빛을 통해 다채롭게 발현되는 순간이다.
이렇듯 빛을 통해 구현되는 세계는 작가가 지향하는 이상향이기도 하다. 문 작가는 “삭막한 도시 속에서 살고 있지만 늘 이상향 같은 세계를 꿈꾼다”며 “우리가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잊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향을 빛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작가는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문 작가는 “세상을 볼 때 사람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함께 존재하기 마련”이라며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19일부터 30일까지. (02)549-3112
정아람 기자 arbam@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