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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원' 돌이킬 순 없어도 꿈꿀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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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소재를 평범하게 녹여낸 이준익 감독의 내공이 돋보였다. 사실, 평범하다는 건 얼핏 보기에 쉬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소원’(감독 이준익)은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원’은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끌기’에 최종목표를 두고 있지는 않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날 이후 가족의 일상을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가 만들어진 지난 9개월을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날들”이라고 회상했다. 제작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대로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괜히 민감한 소재를 끄집어내 피해자 가족들이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도가니’나 ‘돈 크라이 마미’, ‘공정사회’ 등 기존 성폭력 소재 영화들과도 궤를 달리해야 했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고 범인을 잡고 처벌하는 과정이 이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내용 전개상 부수적으로 등장할 뿐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피해자 가족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진다.

비가 오는 날, 소원이(이레 분)는 등교길에 술 취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우산을 씌워달라는 아저씨의 요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9살 소녀는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일이 있어났는지도 채 알지 못한 채 아빠(설경구 분)에게 “내가 잘못한 거야?”라고 묻는다. 

신체적인 상처가 1차 피해라면, 2차 피해는 딸과 아빠간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자신을 범인과 동일시하며 피하는 딸과 마주하기 위해 아빠는 코코몽 가면을 쓰기로 한다. 이런 딸과 아빠의 ‘동화’나 ‘꿈 속 대화’ 같은 장면은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가족의 처절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코코몽이 된 아빠와 그런 코코몽을 바라보며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는 딸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눈가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울어야 하는 장면’이란 강박 따위는 없다. 어느새 관객들 모두가 소원이네 가족이 되고, 소원이가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를 응원하게 된다. 현실과 동화 사이의 경계는 철저히 무너진다.

‘소원’은 일명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전국의 수많은 아동성폭력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대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TV나 뉴스를 통해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표면적인 부분만 볼 뿐, 실제 그들의 아픔을 잘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괜히 맘이 불편해질 것 같아서, 혹은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게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그럼에도 두려움을 잠시 접고 소원이 가족을 만나는 용기를 내보는 건 어떨까. 뉴스나 신문기사가 가르쳐주지 않는 진짜 진실이 이 영화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거칠고 험해도 우리 주변에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살아갈 만 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여기 담겨 있다. 

주인공 소원이를 연기한 이레는 스크린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설경구 엄지원 김상호 라미란 등 배우들의 열연은 그냥 믿고 보면 된다. 12세관람가. 122분. 현재 상영 중. 

현화영 hh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