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대선 불공정' 공방 격화… 정국 요동

문재인 “알았든 몰랐든 박대통령 수혜자”직격탄
靑 “입장 없다”… 전문가 “與가 책임지고 나서야”
박근혜 정권이 4개월 이상 이어지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정국’에 발목이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 의혹이 확산되고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외압설로 내부 갈등이 폭발하며 국정 난맥상이 가시화하는데도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지난 정권의 문제”라고 치부하고 있다. 침묵을 지키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치만 보면서 사태 해결에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여권의 위기 관리·대응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민주당 주도의 대선 불공정 논란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23일 성명을 내고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글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했다. 그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을)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며 “박 대통령이 문제 해결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즉각 실천에 나서길 바란다”고 국정원 개혁과 수사외압 중단 및 문책 등을 촉구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국감에서는 기자들과 만나 “왜 자꾸 대선불복을 말하면서 국민과 야당의 입을 막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전날 민주당 일부 중진이 제기한 대선불복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대선이 치러진 지 10개월여 만에 문 의원이 박 대통령의 대척점에 선 것이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외압 논란 등과 관련해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문 의원의 성명에 대한 청와대 반응은 “특별한 입장이 없다”(이정현 홍보수석)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프레임으로 몰고 갔다. “문 의원이 드디어 대선불복에 대한 자신의 본심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최경환 원내대표), “지금까지 대선불복에 대해 ‘치고 빠지기’를 하더니 이제 본색을 드러낸 것”(김태흠 원내대변인)이라고 성토했다. 황우여 대표는 “국민 주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사초(史草) 폐기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사람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비난도 나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침묵과 집권당의 ‘대선불복’ 프레임은 오히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정국을 정쟁 국면으로 만들어 국정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여권이 이번 사건을 정권의 정통성 훼손 문제로 규정하면서 적극적인 해결보다는 ‘대야 공세’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수직적인 당·청 시스템은 이런 상황을 심화시켰다. “국정원에 선거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국정원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고 선을 그은 박 대통령의 입장에 매여 여당이 개혁 드라이브 등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쟁으로 치닫는 국정원 수사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과 여당이 국정원 제도 개혁, 엄정한 수사 의지 등 사태 해결을 위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만흠 한국아카데미원장은 “박 대통령이 최고권력자로서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이제 여당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보다 건설적인 논의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태영·박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