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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의 전세는 안녕하십니까] (중) 탈세 온상 오피스텔, 정부는 뒷전

홍모(33·여)씨는 지난해 말 서울 용산구에서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인 소형 오피스텔에 입주했다. 전세를 구하고 싶었지만 전세 대란에 적당한 물건을 찾을 수 없어 택한 고육책이었다. 월세를 구하면서 홍씨가 별도로 들인 돈이 만만치 않았다. 당장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깎았는데도 80만원이 나왔다. 부동산중개업체는 오피스텔이 업무용으로 허가가 난 물건이라 주거용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했다.

등기소에 전세권을 설정하는 비용도 36만원이 들었다. 주거용으로 신고되지 않아 전입신고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자는 “그나마 집주인이 전세권 설정을 허락해준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며 “이 동네에서 전입이 되는 방은 없다”고 말했다.

전 세입자가 4년을 사는 동안 지저분해진 벽지를 새로 바르는 비용 30만원도 홍씨 몫이었다. 보증금이 만만치 않아 단순한 월세라기보다는 ‘반전세’라고 볼 수 있지만 집 주인은 전세가 아니라며 새 도배를 거부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반전세가 전세인지 월세인지는 주인 마음대로 결정된다”고 거들었다. 홍씨는 “이번에 이사하면서 오피스텔에 들어가는 세입자가 완전한 ‘을’(乙)이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주택 임대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법적, 제도적 보호장치가 이런 변화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업무용 오피스텔을 둘러싼 탈세와 탈법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정부와 세무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전월세 오피스텔, 전입신고는 금기

오피스텔 소유주가 법과 세무당국의 감시망 밖에서 전입신고 없이 거주용으로 편법 임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인들은 처음 분양 당시 업무용 오피스텔로 신고해 분양가의 10%에 달하는 부가가치세를 돌려받는다. 그런데 전입신고를 해 주거용으로 신고될 경우 이를 토해내야 한다. 또 양도소득세 중과세 폐지 전에는 업무용 오피스텔의 경우 1가구 2주택에 해당하지 않아 세제혜택도 컸다.

이번 조사결과 월세의 경우 전입신고가 가능한 매물은 4% 남짓에 불과했다. 시장에서 규모와 가격, 지역 가릴 것 없이 대부분 금기시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물건은 강서구 등촌동의 보증금 3만원, 월세 40만원(전용면적 18㎡)짜리 오피스텔부터 영등포구 여의도동 보증금 3억5000만원, 월세 50만원(전용면적 100㎡)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됐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입신고나 소득공제를 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넣는 것은 오피스텔 시장에서는 일반 상식으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시장에서 탈세와 편법거래가 기승을 부리는 사이 가뜩이나 부족한 국가 세수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당국은 단속 의지도, 계획도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입신고를 할 경우 통상 주거용으로 인정하고 과세를 한다”면서 “세금 탈루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를 통해 세금을 추징하지만 오피스텔 관련 탈세가 몇 건이나 되는지는 별도의 통계가 없다”고 말했다. 
주택과 아파트 전세난 여파로 오피스텔 전월세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탈세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도심에 위치한 한 유명 오피스텔.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피스텔 세입자는 ‘유령’(?)

업무용 오피스텔을 임대한 서민의 삶은 서럽다. 전입신고는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다. 전입신고 후 확정일자를 받아야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다. 집주인의 ‘갑질’에 세입자의 기본권이 실종된 셈이다.

곤혹스러운 일도 많다. 서울 마포구에 월세를 살고 있는 회사원 정모(33)씨는 지난해 민방위훈련 통지서를 받지 못한 채 해를 넘겨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전입신고를 못해 실제 거주지인 마포가 아닌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통지서가 발송됐지만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이 밖에도 자신에게 청구된 과태료를 알지 못한 채 미납이 됐다가 뒤늦게 알게 돼 분통터져 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득공제 혜택 역시 ‘그림의 떡’이다. 정부는 2013년도 귀속분 연말정산부터 월세소득공제 비율을 종전 40%에서 50%로 올렸다. 또 2014년부터는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지 않아도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혜택을 받는 월세 가구는 극히 드물다. 오피스텔 세입자는 대부분 전입신고가 안 된 상태로 거주해 주민등록상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유령’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막대한 보증금을 요구하는 관행도 논란거리다. 네이버 부동산 목록에서 서울 오피스텔 월세 1039건의 평균 보증금은 2074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 월세 77만원의 26개월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오피스텔 임대 계약이 통상 1년 또는 2년 단위로 이뤄지는 점에 비춰볼 때 집주인이 보증금으로 2년치 이상의 목돈을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셈이다. 전체 월세 물건 가운데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처럼 한 달 임대료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받거나 그 이하로 받는 경우는 14건(1.3%)에 불과했다.

오피스텔 전월세의 과도한 중개수수료도 문제다. 전입신고조차 할 수 없도록 강요받는 오피스텔에 어렵게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업무용 오피스텔은 주택으로 적용되지 않아 최대 0.9%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거주용 주택은 0.3%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수수료 조정에 나서려 하지만 부동산 업계 등 관련 이익단체의 반발 때문에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특별기획취재팀 investigativ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