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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선의 한 주의 시] 꽃제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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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사랑의 다리’ 더 늦기 전에 만들어야

꽃제비 아이 / 백이무

옥수수보따리 이고 가는 저 아지미
잠간 걸음을 멈추고
여기 한 번만 뒤돌아 봐 주세요

제게 만일 옥수수 한 알만 주시면
감았던 눈을 뜨고
힘들지만 한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알만 주시면
정신 들어
쓰러졌던 자리에서 일어설 것 같아요

옥수수 세 알을 주시면
다시 기운 내여
이제라도 막 걸어갈 것 같아요

그보다도 착한 아지미
만약 옥수수 한 이삭만 제게 주시면
내게는 큰 기적이 일어날 거예요

그 이삭을 가슴에 품고
단숨에 저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쌀 구하러 간 엄마를 찾을 것 같아요

그냥 가지 말아요, 아지미
안 주고 가시면 저는 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빠에게 갈 수밖에 없어요, 엄마도 다시 못보고…


그림=화가 박종성
얼마 전에 미국 PBS방송에서 ‘비밀국가 북한’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 자료를 방송하여, 북한의 맨 얼굴 일부가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추운 거리를 떠도는 꽃제비의 처참한 모습 등을 보면서 우리 국민은 누구나 가슴 찡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수호를 위한 국제기구인 ‘국제PEN’ 한국본부의 도움으로 탈북 작가들이 ‘망명 북한작가 PEN센터’를 서울에서 설립하고 정식회원국이 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망명 북한작가 PEN문학’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이 시는 어렵게 출간된 그 책에 실린 것이다. 백이무 시인은 자신의 꽃제비 체험을 담은 시집 ‘꽃제비의 소원’을 출간하고 서문에서 ‘이 시집을,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지금은 대부분이 죽어간, 그러나 불쌍한 그 원혼들이 아직도 구천에서 정처없이 떠돌고 있을 나의 옛 꽃제비 친구들에게 삼가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녘 땅 어딘가에서 죽어가는 꽃제비 아이가 ‘그냥 가지 말아요 아지미’ 하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 손짓할 힘조차 없이 마음속으로 ‘옥수수 한 알만’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옥수수 한 이삭’이 우리나라에는 넘쳐나서, 비만이 큰 질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을 건네줄 사랑의 다리를 우리의 지혜로 더 늦기 전에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혜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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