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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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가족이 최고 가치” 혈육의 소중함 일깨워

가족애 신드롬
소홀했던 혈육의 소중함 일깨워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안전포비아(phobia·공포증)’에 걸렸다. 지하철 추돌 등 안전사고에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걱정이 가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안전포비아는 6·4 지방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의 표심을 여지없이 흔들어놓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바꿔놓은 대한민국의 모습을 긴급 진단한다.


직장인 이모(30)씨는 최근 어렵게 휴가를 내 곧장 고향에 내려가 부모를 뵀다. 이씨는 원래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사고 때문에 생각을 바꿨다.

이씨는 “진도 팽목항에서 아들과 딸을 애타게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보며 남몰래 울었다”며 “바쁜 생활에 치어 정작 내 옆을 지켜준 가족에게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얼굴을 뵈니 괜시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덧붙였다.

주부 박모(59·여)씨도 지난 2∼6일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박씨는 “가족들이 직장과 학교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며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어렵게 시간을 맞춰 5년 만에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한 달. 온 국민을 슬픔과 비통에 빠뜨린 이 비극적 사고는 현실에 쫓겨 가족들끼리 대화와 교류가 뜸했던 국민들에게 ‘가족’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가족중심의 소비가 증가하는 등 ‘가족애(愛) 신드롬’이 일었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한국여행업협회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단체여행은 크게 줄었다.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을 제외하고도 일반인 4만5000여명이 단체여행을 취소했다. 대신 소규모 단위로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증가하고 있다.

여행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활동적인 프로그램 위주로 계획됐던 여행보다 가족단위로 호텔이나 리조트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소비패턴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전반적인 소비는 위축됐지만 가족과 안전을 위한 소비는 증가하는 추세다. 롯데마트는 지난 1∼7일 카네이션의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43.1% 증가했다고 밝혔다. 어버이날 직전인 6∼7일에 팔린 편지지는 지난해 팔린 매출보다 40% 정도 늘었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그동안 경제와 정치, 복지 문제에만 매몰돼 있던 우리 사회가 이번 세월호 참사로 큰 충격을 받게 되면서 개인을 성찰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성공’과 ‘성취’만을 보며 달려오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고, 이것이 가족애 신드롬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