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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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3일간의 기록] ⑪ 뒷목이 오싹해진 살인사건 취재기

지난 4일 서울 강북경찰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취재하라는 선배의 지시가 떨어졌다. 폭행사건이나 자동차 접촉사고 취재에도 끙끙대던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사건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형사당직실로 찾아갔다. 형사들은 “아는 바 없다”, “나가 달라”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문앞에서 버티고 서있은 지 30분쯤 지나 마침내 입을 여는 형사를 만났다. 1진 선배에게 ‘깨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북구 수유동의 한 모텔에서 옆구리를 수차례 찔린 여성이 발견됐다는 112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피해 여성인 A(29)씨는 자신보다 29살이나 많은 B(58)씨와 함께 있었다. 한씨는 손이 묶인 상태로 침대와 벽 사이에 무릎을 꿇은 채로 발견됐다. 용의자 김씨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운 상태였다. 소변 검사 결과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둘의 관계가 사인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사건 취재를 할 때는 항상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도 자세히 그려나가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이런 살인 사건은 어떨까. 나름대로 질문을 던져 내용을 보충해보지만 항상 구멍이 뚫렸다. 흉기는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용의자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까지 확인해야 했다.

담당 형사는 다소 조심스러워하며 “구체적인 묘사는 피해 달라”고 말했다. 잔인한 범행 수법을 지나치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충격받은 유가족들이 방금 찾아와 한참을 울고 나갔다고 귀띔했다.

순간 뒷목이 오싹했다. 나는 경찰서에 들어서는 길에 대여섯 명의 중년 여성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던 모습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들은 피해자의 이모와 고모들이었다.

기자가 만나는 세상은 내가 이전에 겪었던 세상과는 다르다.

술에 취해 경찰관과 승강이를 벌이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며, 형사들의 적대적인 눈빛과 귀찮아 하는 말투를 일상적으로 겪어낸다. 거기다 살인 사건까지.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살인 사건 취재는 이제 막 수습기자로 초행길에 나선 나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겸손하면서도 의연한 마음가짐을 배우는 것, 이것이 수습기자가 24시간 경찰서를 도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망설이고 주눅 들었던 수습으로서의 첫 3일이 지났다. 남은 기간 낯선 경찰서에서 고개를 떨어뜨릴 일이 생길 때마다 이날 살인사건 취재 경험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리라 믿는다.

최봄이 기자 bom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