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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첫 재판…쟁점은 '항로변경죄'

항공기 항로변경 혐의 집중 반박·국토부 조사관도 비밀누설 부인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땅콩 회항’ 사태를 일으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관련 인사들이 19일 열린 첫 공판에서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다.

연두색 수의를 입은 조 전 부사장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법정에서 굳은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했다. 그는 ‘할 말 있으면 해도 된다’는 재판부의 말에 “없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함께 법정에 선 여모(58·구속) 객실승무본부 상무와 김모(55·구속) 국토교통부 조사관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고인 3명의 변호인들은 5시간30분간 진행된 재판 내내 검찰과 뜨거운 공방전을 벌였다.

‘땅콩 회항’으로 구속기소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여모 객실승무본부 상무, 국토교통부 김모 조사관을 태운 호송버스가 19일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피고인은 탑승 승객과 사무장, 승무원에게 피해를 끼친 점을 반성하고 뉘우친다”면서도 대부분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특히 처벌 수위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는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항로’에 대한 명백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주로를 항로로 보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항공보안법상 문을 닫으면 이륙으로 보기 때문에 당시 항공기는 명백히 ‘운항 중의 항로 변경’에 해당한다고 맞받아쳤다.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은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운항에 저해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증거인멸의 주범으로 지목된 여 상무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여 상무의 변호인은 “박창진 사무장에게 허위 진술서를 강요한 것은 언론 보도가 되기 전(지난해 12월8일)으로 형사문제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해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 압수수색 시 컴퓨터 바꿔치기 등을 지시한 것은) 여 상무 자신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증거인멸을 하려 했던 것으로, 자기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증거인멸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대한항공이 조직적으로 관련 임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다른 직원이 여 상무에게 ‘어제 보내드린 박 사무장 리포트 지금 방금 삭제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며 “여승무원 역시 남자친구에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지’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김 조사관 측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보고서 작성자가 전혀 아니다”며 “당시 보고서 내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 국토부 공무원이 피고인에게 미리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김 조사관이 여 상무에게 말한 것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조사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통상적인 이야기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조사관이 여 상무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여론 추이를 보면서 향후 조사 강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며 “이 같은 사실을 김 조사관에게 들어서 확인했다는 여 상무의 진술은 이미 조사에서 확보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박 사무장의 경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재판부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피고인(조현아)의 양형 부분과 관련해 재판부 직권으로 조양호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과 박 사무장, 여승무원이 증인으로 다음 재판에 참석할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30분에 열린다.

권이선·최형창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