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연두색 수의를 입은 조 전 부사장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법정에서 굳은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했다. 그는 ‘할 말 있으면 해도 된다’는 재판부의 말에 “없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함께 법정에 선 여모(58·구속) 객실승무본부 상무와 김모(55·구속) 국토교통부 조사관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피고인 3명의 변호인들은 5시간30분간 진행된 재판 내내 검찰과 뜨거운 공방전을 벌였다.
‘땅콩 회항’으로 구속기소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과 여모 객실승무본부 상무, 국토교통부 김모 조사관을 태운 호송버스가 19일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조 전 부사장의 변호인은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운항에 저해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증거인멸의 주범으로 지목된 여 상무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여 상무의 변호인은 “박창진 사무장에게 허위 진술서를 강요한 것은 언론 보도가 되기 전(지난해 12월8일)으로 형사문제가 될 것이라고 인식하지 못해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 압수수색 시 컴퓨터 바꿔치기 등을 지시한 것은) 여 상무 자신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증거인멸을 하려 했던 것으로, 자기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증거인멸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대한항공이 조직적으로 관련 임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검찰은 “다른 직원이 여 상무에게 ‘어제 보내드린 박 사무장 리포트 지금 방금 삭제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며 “여승무원 역시 남자친구에게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지’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김 조사관 측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은 보고서 작성자가 전혀 아니다”며 “당시 보고서 내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이 사건 보고서를 작성한 국토부 공무원이 피고인에게 미리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또 “김 조사관이 여 상무에게 말한 것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조사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통상적인 이야기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김 조사관이 여 상무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여론 추이를 보면서 향후 조사 강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등의 내용이 있었다”며 “이 같은 사실을 김 조사관에게 들어서 확인했다는 여 상무의 진술은 이미 조사에서 확보됐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박 사무장의 경우 대한항공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을지 재판부의 초미의 관심사”라며 “피고인(조현아)의 양형 부분과 관련해 재판부 직권으로 조양호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과 박 사무장, 여승무원이 증인으로 다음 재판에 참석할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30일 오후 2시30분에 열린다.
권이선·최형창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