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의식이 유커들에게 결혼식 축제의 장으로 잘못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이를 바로잡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문화해설사는커녕 중국어 안내판조차 없었다. 1시간가량 둘러보는 동안 중국인들에게는 낯선 고싸움이나 돌잔치 등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답답한 유커들은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성토했다. 쑹춘옌(39)씨는 “민속자료를 보면 광주가 상당한 역사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의미를 전혀 모르고 돌아간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북적 지역 간에 중국인 관광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1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중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북적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
광주시가 민선 6기 들어 유커 유치에 적극적이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광주시가 올해부터 70억원을 들여 추진 중인 ‘차이나 프렌들리’는 이렇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제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찾는 유커들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VIP 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이면 1000만 시대를 열게 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643만명으로 전년에 비해 46% 증가했다.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수(1217만5000명)의 35.5%를 차지했다. 외국인 관광객 3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유커인 셈이다. 유커는 2007년 100만명을 돌파한 이후 해마다 20∼30%씩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3년 433만명으로 4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때까지 부동의 1위였던 일본을 끌어내렸다. 이런 증가세를 감안하면 5년 후 1000만명 돌파는 기정사실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유커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 쪽의 자치단체들은 민선 6기 들어 유커 공략에 더 전념하는 모양새다. 광주시는 지난해 민선6기 출범과 함께 ‘차이나 프렌들리’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한류관광기반 구축과 특화거리 조성이 핵심이다.
유커 유치를 전담하는 조직과 기구를 두는 자치단체들도 잇따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조직 개편 때 중국과를 신설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중국 관련 업무를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의도에서다. 인천시는 국제협력관실에 중국팀을 확대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와 무역 업무를 총괄할 중국 전담부서를 신설한다는 방침이다.
한산 유커들이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의 한 전시실에 미니어처로 재연한 남도의 고싸움 놀이를 보며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있다. |
자치단체들이 유커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중국의 여행 자유화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50만명을 넘어서면서 국내에는 유커 붐이 일었다. 자치단체들은 이때부터 중국 현지에서 여행사들을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가진 뒤 국내 팸투어를 실시했다. 한류의 진원지인 드라마 촬영과 성형 의료 관광을 중심으로 상품 개발에 나섰다. 자매결연한 중국 도시나 국내 중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관시(關 系)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이는 광주시와 경남도 등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10년간 각 자치단체들이 추진한 유커 유치 사업은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중국 현지 사업설명회를 비롯해 의료관광, 유학생 관시(關系)마케팅, 한류 관광지 중심 상품 개발 등 천편일률적이다. 유커 입장에서 보면 한국 어디를 가나 비슷해 수도권과 제주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치단체의 유커 유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유커 대부분이 수도권과 제주에 몰리면서 다른 자치단체들은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이 2013년 유커를 대상으로 방문지를 분석(중복응답)한 결과 서울 80.9%, 경기 17.9%로 수도권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제주(17.9%)와 영남(15.6%)이 10%대를 넘겼을 뿐 강원 9.2%, 인천 7.8%, 충청 4.0%, 호남 3.8% 등 나머지 지역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호남 등 일부 지역은 유커의 불만을 사고 있는 면세점과 숙박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여전히 미흡하다. 전남발전연구원 조창완 중국연구센터장은 “중국인들의 관광목적이 쇼핑인데, 그런 시설이 없어 돈을 쓰고 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관련 인프라 구축 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