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슬기롭게 개척하지 못하는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보면 망령을 떠올리게 된다. 구한말 우리는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에 질질 끌려 다녔다.
시대적 효험을 상실한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역사의 격랑을 넘고자 했고, 이는 대원군의 쇄국과 위정척사로 나타났다. 이는 언뜻 보면 국력의 재정비 강화였던 것 같지만 실은 과거로의 심각한 퇴행이었다. 청일전쟁(1894)의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명성황후의 시해(1895)에 이어 노일전쟁(1904∼1905)의 승리를 발판으로 을사늑약(1905)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미국은 태프트-가쓰라 밀약(1905)으로 필리핀에서 미국의 권익을 보장받는 대신 일본의 한국 지배를 승인했다.
국가는 오로지 힘이 있어야 한다. 구한말 조선은 친일파, 친청파, 친러파, 친미파 등 여러 파벌로 나뉘어 나름대로 세력균형과 실리를 얻고자 했으나 국력이 미약했던 관계로 결국 분열되었고, 외세는 저마다 자신의 국익을 챙겨갔다. 지금은 물론 그때의 우리나라가 아니다. 국력의 신장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진입했고, 국민소득은 2만5000달러를 넘었고,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부문별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것도 적지 않다.
세계적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050년이면 한국이 세계 최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왜 구한말의 망령을 보는가. 근대국가의 상징인 국회가 완전히 당쟁의 전당, 진원지로 전락했다는 데서 우선 찾을 수 있다. 여야 합의로 모든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국회선진화법은 도리어 국회후진화법으로 둔갑하였고, 청문회법은 당쟁과 인신공격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국민을 위한다’는 말은 상투적 주문이 되었고, 정체불명의 ‘국민의 뜻’은 아전인수가 된 지 오래다. 오늘의 여야 의원을 보면 시정잡배들처럼 무슨 ‘정당(政黨)사업’이라도 벌이는 듯하다.
국회는 아예 행정부가 정치를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은 정부의 통치행위 자체를 막아서 고사시킴으로써 차기 정권을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야당은 독자적인 비전이나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하거나 안을 내놓더라도 나라의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노조와 이익집단을 편들어 주기에 바쁘다. 한시가 급한 경제활성화 법안 등 산적한 법안 처리는 오리무중이다.
한국이 오늘날 정치적 수렁에 빠진 이유는 ‘과거’와 ‘귀신’과 ‘원한(복수)’이라는 삼귀(三鬼)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과거가 미래를 심판하고 있다’,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못 살게 하고 있다’, ‘원한이 신바람을 막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의 소득수준이 올라갔다고 하지만 아직도 국민의 집단심리 이면에는 과거 식민지시대와 가난한 시절에 입었던 집단적 상처(트라우마)와 그에 따른 보복심리가 깔려 있다.
현재 ‘위안부’ 문제는 한·일 외교와 우호 증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석학 187명이 ‘일본 정부의 위안부 과거사 왜곡’ 등을 비판하는 집단공동 성명서를 냈고, 일본의 잘못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위안부 사과가 조건이 되어 한·일관계 개선을 막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아베의 중국 방문과 미국 방문, 미·일의 새로운 동반자관계 과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승전기념 방문과 정상회담 등으로 한국외교만 소외·고립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 모두 주체적인 역사인식과 외교역량의 부재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를 심판하는 것은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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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서민경제는 지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심리적 허탈과 의욕 상실의 도미노 현상으로 나라 전체가 침체의 늪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미국산 쇠고기파동처럼 반체제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니 상처로부터 서서히 벗어날 때도 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근대사에서 주인이 되어보지 못한 결함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노예적 보복심리, 원한감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은 항상 자신에 대한 긍지로부터 ‘좋음’을 찾아내는 반면에 노예는 다른 사람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정당화하는 ‘선’을 찾아내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한다.
주인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노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노예적 보복심리에 종북좌파, 대학운동권적 좌파들이 편승하여 국정을 교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미래에의 비전으로 신바람과 긍정으로 돌려놓을 국민적 대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미래를 건축하는 자만이 과거를 심판할 권리를 갖는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