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4월14일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고종이 얼마전까지 거처로 삼았던 덕수궁 함녕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30분 후쯤 화재를 알리는 비상벨이 궁궐에 울려퍼졌다. 불은 삽시간에 덕수궁의 주요 전각을 덮쳤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보수를 거쳐 당당한 위상을 자랑하던 궁궐은 잿더미가 됐다.
덕수궁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날의 화재는 여러 가지로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화재 직후 곧바로 수사가 진행돼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잇따랐다. 공식적인 원인은 함녕전에 새로 만든 아궁이의 과열이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궁궐 보수 책임자가 체포됐다. 전통대로라면 책임자는 사형에 처해지고, 다른 관련자들은 귀양을 가거나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징역 혹은 유배를 받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고종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당시 화재의 원인이 다른 쪽에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화재 직후의 상황도 짚어볼 대목이 있다. 일본 공사는 고종에게 불탄 덕수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길 것을 거듭해 압박했다. 주한 미국공사의 협조까지 구해 고종을 설득했다. 그러나 고종은 듣지 않았고 덕수궁을 재건하도록 명령했다.
덕수궁의 화재를 두고 일제의 방화를 의심하는 시각이 강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화재를 전후해 일본군이 궁궐 주변을 점령했고 1차 한·일협약, 을사늑약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의 침략과 시종일관 맞물려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