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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로 위 흉기, 대포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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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유통·폭주… 범죄 악용에 죽을맛” 전국 활보하는 차량 100만대
나는 2012년식 검은색 그랜저다. 대구에 사는 3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던 첫 주인은 지난해 2월 사설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었다. 급전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애지중지하며 ‘애마’처럼 다루던 나를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경찰과 중고차 매매업 관계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대포차의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대포차로 포장되어 불법 판매된 외제차
자료사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주인에게 사채업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기 대출 한도 리스트 보이시죠? 외제차는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이고 국산차는 최대 700만원인데, 그랜저급은 500만원까지 해드려요.”

사채업자는 3개월 안에 원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가 밀리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차량포기 각서’와 다른 사람이 담보차량을 운전해도 된다는 내용의 ‘운행동의서’ 서명을 받아갔다. 사채업자는 정확히 3개월 만에 다시 나타나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대포차’ 신세가 됐다.

업계에서는 전국에 나 같은 처지에 놓인 차가 100만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나처럼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맡겼다가 불법으로 유통되는 ‘개인채권 차량’의 비율이 60% 정도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파산한 회사 명의이거나 아예 대포차 유통을 목적으로 세운 유령 법인에서 태어난 법인채권 차량으로 추정된다. 노숙인, 장애인 등의 명의로 불법 개통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사채업자에게서 대포차 전문 브로커를 거쳐 경기도 외곽의 한 대형 중고차 매매센터로 넘어갔다. 며칠 뒤 인터넷 대포차 거래 사이트를 보고 20대 대학생이 찾아왔다. ‘명의이전 불가’ 조건으로 브로커가 제시한 가격은 900만원. 새 주인은 “2012년식에 이만큼 깨끗한 녀석은 보통 2000만원 넘는 가격에 올라오는데 횡재했다”며 좋아했다.

예전에는 우리를 범죄에 악용하려는 조직폭력배나 정상적으로 차량을 등록할 수 없는 채무불이행자, 불법체류자 등이 주인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우리를 찾는다. 싼값에 고급차를 이용해보려는 허영심에 우리를 사가는 젊은 층도 늘어나고 있다.

나는 새 주인을 만난 후부터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밥먹듯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면서 의무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채 나를 함부로 몰고 다녔다. 어차피 과태료는 첫 주인에게 부과되고,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명의가 달라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혹사당하고 있다.

‘도로 위의 흉기’로 변해 아찔한 질주를 이어가던 나는 지난 7월 경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수배차량임을 확인한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통해 못된 주인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올해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일반 경찰관도 직접 대포차를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현행법상 대포차를 유통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내년 2월부터는 대포차를 운행한 사람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경찰청은 지난 5월 발표한 ‘대포차 종합근절대책’ 이후 대포차로 의심되는 차량 6654대를 전국에 수배하고 이 중 50대를 적발하고 44명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밀린 세금과 과태료가 부담이 되는 걸까. 경찰은 나를 압수하고 번호판을 영치 조치했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고 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