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30일 일본군위안부 협상 타결과 관련, 비판적인 국내 여론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심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위안부 할머니 만남, 신년회견 등을 통한 대통령 대국민메시지, 고위당국자 전방위 설득 작업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섣부른 대응은 또 다른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엔 합의 직후 일본 언론의 무차별적인 추측 보도에 대한 경계 의미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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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신규 임용 외교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과 위안부 할머니의 직접 만남은)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가실 때 가시는 것이지, 대통령 일정이라는 것을 먼저 말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경호 문제 등으로 대통령 일정을 사전에 알릴 수 없는 만큼 검토 여부에 대해서도 공개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합의 직후 부정적인 국내 여론뿐 아니라 일본 내 인사들의 잇따른 도발적 발언과 미·중 등 국제사회 평가 등이 맞물리면서 박 대통령 행보 하나하나가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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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이후 처음으로 30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2015년 돌아가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추모회 및 제121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왼쪽), 이용수 할머니가 착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올해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남정탁 기자 |
따라서 당장 박 대통령이 직접 위안부 할머지들을 만나기보다는 우선 공식회의나 신년 메시지 등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 치유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신 정부 내 황교안 국무총리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협상 결과를 설명하고 이해를 요청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설명해 나갈 것”이라며 “야단 맞고 비판받더라도 진정성 있게 정부 입장에 대해 이해를 요청하는 절차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 측 언론 플레이에는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일본이 자국 내 정치 상황을 고려해 협상 결과를 유리하게 해석하며 언론에 흘리는 것은 과거 협상에서도 나타난 일본 정부의 전형적인 외교 전략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한국 내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병국 의원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해결됐다고 받아들일 때 해결됐다고 본다”며 “실행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을동 최고위원도 “협상은 타결됐다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며 “정부가 이행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담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일 간 이번 합의로 국회에 계류 중인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제정법 처리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정법은 2014년 11월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3차례 소위 논의에 머물러 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외교부의 한·일 간 실무협의를 이유로 법안심사를 보류한 바 있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