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다 올해 국내총생산(GDP)도 전년 대비 3% 이상 늘기 어렵다는 민간 경제예측기관들의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단기간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는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지속적인 성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반성과 위기의식도 요 몇년 새 재계 전반에 팽배해졌다.
먼저 2001년 이후 한국 제품이 줄곧 세계시장 1위를 달리는 품목과 기업 가운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끌고 있는 메모리반도체(D램)가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초박막 액정표시장치(TFT-LCD),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설비, 가전제품 표면재로 쓰이는 LG하우시스의 고광택 시트, 삼성SDI와 LG화학의 리튬전지(2차전지) 등도 퍼스트 무버로 부족함이 없다. 중견기업에서는 휴비스가 녹는 점이 상대적으로 낮아 화학접착제 대신 쓰이는 친환경적 섬유인 폴리에스테르 LM(Low melting)으로, 이오테크닉스가 반도체 및 웨이퍼의 칩 표면, 기판 내부 등 각종 재질의 표면에 로고나 상호, 날짜 등 제품 정보를 레이저로 새겨 넣는 레이저마커로 각각 세계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2002년 이후 세계시장 1위를 수성 중인 업체로는 6000마력 이상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을 장악한 현대중공업과 두산엔진, STX중공업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함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CJ제일제당의 핵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LCD TV도 이때부터 정상을 지키고 있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코덱이 카지노용 산업 모니터를, 풍산이 동합금 소전(동전에 무늬를 넣기 전 상태)을 통해 각각 세계 1위 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의료용으로 각광받는 개인용 온열기는 세라젬, 미건의료기, 누가의료기 등 국내 중견기업 3인방이 세계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중소기업 가운데는 유니베라가 해외 농장 개척을 통해 2003년부터 알로에 세계시장 1위에 올랐고, 마크애니는 2004년부터 인터넷 증명서 발급 솔루션의 글로벌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이처럼 퍼스트 무버로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기업 밑바탕에는 끊임없는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로 일군 혁신적인 기술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 실제로 세계 최대의 특허정보 서비스 기업 톰슨 로이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5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는 퍼스트 무버들이 대거 포함됐다. 세계 100대 혁신기업은 특허 출원규모와 승인 성공률, 영향력을 종합 분석해 톰슨 로이터가 해마다 선정하는데,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LS산전이 5년 연속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전자는 정보기술(IT)을 필두로 바이오 등 여러 산업영역에서 방대한 특허 출원실적을 보여준 점이 높이 평가됐다. LG전자는 가전업계의 혁신 ‘아이콘’으로 평가받았다. 아울러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업계의 대표적 혁신기업으로 꼽혔고, 현대차는 자동차 분야 혁신 경쟁에서 1위 도요타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5년 발명 3214건으로 도요타(4338건)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