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이행권고결정을 받고도 전 직장에서 월급 317만원을 떼인 B씨도 최근 소액체당금 제도의 구제를 받고자 두 번째 소송을 냈다. 그러나 B씨의 소송은 법원에서 '각하'됐다. 법원은 "이행권고결정을 이미 받은 만큼 같은 내용의 소송을 또 내는 건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B씨는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소액체당금 제도는 임금체불 근로자의 생계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7월1일 시행됐다. 근로자가 회사·업주에 소송을 내 제도 시행일 이후 승소가 확정되면 최대 300만원을 지급한다. 작년 11월까지 1만784명이 이를 통해 밀린 임금 257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A씨와 B씨처럼 제도 시행 전 이행권고결정을 받고도 여전히 월급을 못 받은 근로자의 재소송 결과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조건이지만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는 상황에 "왜 나는 밀린 월급을 못받느냐"며 소송 대리인에게 따지는 일도 있다.
이런 일은 판사마다 이행권고결정의 법적 효력이 정식 판결과 같은지를 달리 해석해서다. 이행권고결정은 2천만원 이하 민사사건에서 재판 없이 서류로만 신속히 심리하는 일종의 간이 판결이다. 효력이 정식판결과 같다고 본 판사들은 '동일한 소송은 제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내세워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대리한 사건만 이렇게 각하된 사례가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서 51건이다. 같은 조건의 승소 사례 1천307건보다 수가 적다.
하지만 각하 판결이 하나 둘 나올수록 소액체당금 제도를 이용해 업주가 안주는 돈을 정부에서 받으려는 근로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사건을 새로 맡은 판사들은 혼선을 겪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판사가 직접 전화해 소액체당금 제도의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일도 있었다"며 "월급을 못 받은 근로자를 최대한 구제하자는 게 제도 목적인 만큼 소송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제도 취지는 이해하지만 같은 내용의 소송을 두 번 하는 것은 우리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며 "다시 소송을 내시는 분들은 안타깝지만 소액체당금 제도의 수혜 대상이 아닌 걸로 보인다"고 했다.
해결 방법은 마땅히 없다. 당분간 어느 판사가 사건을 맡느냐에 따라 체불 근로자들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현재 재소송을 내 1심 결과를 기다리는 근로자는 법률구조공단이 대리한 사례만 전국 1천431명이나 된다.
법조계에선 1심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근로자들이 모두 항소한 만큼 대법원 판단이 나와야 판결 방향이 명확해질 걸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올해 소액체당금 예산을 807억원으로 작년보다 111억원 증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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