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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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연구관들이 재판 주도”… “대법 과부하로 불가피”

재판연구관 제도 싸고 논란도
상고법원 지지부진… 대안없어
현행 대법원 재판연구관 제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적지 않다. 우수한 인력을 1·2심에 집중 배치해 하급심을 강화해야 하는데 되레 대법원으로 흡수해 상고심 사건의 기초 검토를 맡겨 하급심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대법원 사건 심리의 주역은 대법관이어야 하는데 연구관들이 너무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이 처리하는 사건 규모를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22일 대법원에 따르면 상고심 사건은 2009년 이후 매년 3만건을 웃돈다. 2008년까지 2만건을 유지하다 2009년 처음 3만건을 돌파한 이후 2014년 3만7652건을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따져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을 처리하는 꼴이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도저히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외국은 상고허가제를 둬 주요 사건만 대법원이 심리한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1명이 1년에 10여건을 담당하고 영국은 그보다 낮은 1인당 6∼7건에 불과해 충실한 검토가 가능하다.

우리는 ‘국민정서상’ 상고허가제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한국 사람들은 일단 법원에 간 이상 ‘끝까지 가보자’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지 상고허가제를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궁여지책으로 중요한 상고심 사건을 전담하는 ‘상고법원’을 도입하려 했으나 지지부지한 상태다. 상고법원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한 데다 나라 안팎의 다른 큰 사건에 묻혀 국민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법관 1인당 연간 3000건이라는 비현실적 근무 여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연구관들이 대법관을 대신해 ‘무대 뒤편’에서 사건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관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상고법원을 거부한 결과 결국 연구관이 사건을 주도하는 현 제도를 유지하게 됐다는 점은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