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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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관급공사, 입찰 담합 '일벌백계' 내세웠지만…

제구실 못하는 입찰제한제도… 적발해도 특사에 무력화되기 일쑤
관급공사(공공건설사업) 담합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등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진은 입찰담합 과징금을 받은 관급공사 중 하나인 ‘4대강 공사’ 중 낙동강 달성보 공사 현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관급공사에서 입찰담합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입찰제한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한 번이라도 관급공사에서 담합을 하면 최대 2년간 모든 공공공사에 입찰을 못하게 한다. ‘일벌백계’를 통해 담합을 뿌리 뽑겠다 뜻이다. 하지만 입찰제한제도가 대통령 사면으로 번번이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수십년째 내려온 건설업계의 관행과 감독기관의 온정주의가 더해져 담합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24일 “입찰제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대기업 중 입찰제한 처분을 실제로 받은 곳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8월15일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입찰제한이 풀린 건설사는 총 44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72%가 4대강 턴키 공사와 인천도시철도 2호선 공사 등에서 담합한 대형 건설사다. 특히 현대건설, SK건설, GS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대우건설 등 6개 회사는 두 개의 공사 모두 관련돼 있는 업체다.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결과적으로 담합기업에 대한 사면은 대형 건설업체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담합을 통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공정성을 파괴한 업체에 대해서는 원칙에 의거해 용서 없는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는 입찰제한 처분을 받은 기업의 제한이 사면을 통해 풀리지 못하도록 막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업계는 입찰제한제도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징금과 함께 검찰고발뿐만 아니라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중복제재라는 입장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입찰 제한은 결국 건설사보고 사업하지 말라는 소리”라며 “과징금을 내고 공사도 못하게 막는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지나친 처벌”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입찰참가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5월 국회에서 열린 ‘입찰참가자격 제한제도 개선에 대한 토론회’에서 관련 법규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국가계약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법원의 온정주의도 담합이 이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입찰제한 처분을 받은 업체가 가처분신청을 낼 경우 법원은 대부분 업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11년부터 작년 8월까지 업체들이 조달청을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 제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255건 가운데 90%가 ‘인용 결정’이 났다. 기업들은 가처분신청이 인용된 시점부터 본안 판결이 날 때까지 2∼3년간 아무런 제재 없이 관급공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처분소송의 특성상 인용받는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럴 경우 입찰제한제도 자체가 무력화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최근에는 기업들도 일단 소송을 하고 보자는 식이어서 정부도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