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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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순수하게… 때론 섹시하게… 성적 판타지의 진화

'오빠'들의 걸그룹 무한사랑

새 앨범을 컴백한 6인조 여성그룹 여자친구
‘소녀’는 사랑받는 존재다. 그래서 ‘소녀’에게는 늘 ‘오빠’가 필요하다. 미성숙한 어린 여성을 지켜주기 위한 든든한 존재로서 말이다. 소녀와 오빠는 가요계에서 ‘걸그룹’과 ‘팬’으로 다시 만난다. 1997년 3인조 여성그룹 S.E.S의 등장을 시작으로 때론 순수하게, 때론 섹시하게 여성적 매력을 앞세워 온 걸그룹의 인기는 남성 팬들의 성적 욕망은 물론 또래 여성의 환상까지 충족하며 2016년 현재까지 순항 중이다. 

 ◆겉모습만 진화한 ‘소녀’…S.E.S에서 아이유까지”

 “순수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육체적 노출을 적게 하는 대신에 남성들이 원하는 성적 판타지를 정확히 파악해 만족시키는 것.”

가수 아이유

 지난해 말 책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을 펴낸 한지희 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소녀’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걸그룹 소속 기획사의 마케팅 전략을 이같이 표현했다. 한 교수는 이런 전략을 통해 탄생한 걸그룹의 공통점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거리가 먼 모습을 지향한다는 것을 꼽았다. 1990년대 후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1세대 걸그룹 S.E.S와 핑클이 대표적이다. S.E.S와 핑클은 각각 대표곡 ‘아임유어걸(I’m Your Girl)’과 ‘내 남자친구에게’를 들고 나와 제목부터 오빠들을 겨냥했다. 이후 2세대 걸그룹으로 분류되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등장해 “oh, oh, oh, oh, 오빠를 사랑해”(노래 ‘OH’), “텔미 텔미 내가 필요하다 말해 말해줘요(노래 ‘Tell Me’)”라며 오빠들의 사랑을 갈구했다. 이들 외에도 카라, 티아라, 에이핑크, 러블리즈 등 무대 위에서 요정같이 춤추는 기존의 순수한 소녀 이미지를 답습한 차세대 걸그룹들이 속속 등장했다. 
소녀시대

 이런 흐름을 과감하게 거부한 ‘소녀’가 ‘국민여동생’ 가수 아이유였다. 그는 미니앨범 ‘챗셔(Chat-Shire)’에 수록된 타이틀곡 ‘스물셋’을 통해 오빠들의 환상에만 갇혀있던 이미지 탈피를 시도했다. 아이유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라면서 동시에 “돈이나 많이 벌래”라며 어리고 순수한 소녀라면 할 수 없는 이중적 태도를 노래한다. ‘좋은 날’ ‘분홍신’ 등의 노래를 통해 모범적인 소녀의 모습을 구축했던 아이유의 이런 변신에 대해 ‘삼촌’을 자처해온 남성 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 교수는 “가요계의 소녀들을 ‘여동생’ 삼아 롤리타 콘플렉스를 순수한 보호자의 관심으로 위장하려 한 시도가 들킨 셈”이라며 “‘문화적 원조교제’를 하고 있던 가부장 오빠들의 ‘오빠 판타지’가 조롱당했다”고 설명했다.

 ◆“순진한 ‘소녀’의 정점 그룹 ‘여자친구’”

육체적으로는 ‘여인’에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미성숙한 ‘소녀’를 지향하는 걸그룹의 정점에 그룹 ‘여자친구’가 있다. 2015년 1월 데뷔한 여자친구는 지난해 빗속에서 춤추다 아홉 차례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담은 이른바 ‘꽈당 직캠’이 공개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 외로워도 슬퍼도, 인기가 없어 힘들어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해 여자친구는 각종 연말 시상식 신인상을 휩쓸었다.

여자친구는 지난 25일 세 번째 미니앨범 ‘스노플레이크(Snowflake)’로 컴백했다. 소속사는 ‘순수한 눈꽃처럼 약하지만 빛나고, 추운 곳에서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이번 앨범의 콘셉트이라고 소개했다. 과거 걸그룹들이 내세웠던 청순함은 기본 바탕으로 두고, 파워풀한 안무를 곁들인 ‘파워청순’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여자친구의 멤버들은 교복을 떠올리게 하는 흰 블라우스에 남색 원피스를 입고 청순함을 극대화하는 흰 양말과 검정 메리제인 구두를 신은 채 춤을 춘다. 이번 타이틀곡 ‘시간을 달려서’는 공개되자마자 소리바다, 벅스뮤직 등 주요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소속사 측은 이번 신곡 발표로 그동안 여자친구의 콘셉트였던 ‘학교 3부작’을 마친다고 설명했다. 소녀들이 있어야 할 안전한 장소인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여자친구 멤버들은 “청순은 여자라면 갖추고 싶은 모습”이라며 앞으로의 활동 역시 ‘순수소녀’에 맞춘 콘셉트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당분간 소녀들의 활약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