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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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주민들 "신년사 관심없다…나아진게 없어"

북한 주민들은 연초마다 최고지도자가 신년사를 발표하면 신년사를 암송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각종 모임에 동원된다.

북한 매체는 연일 사회·학술 단체들이 잇따라 총회를 소집해 김정은 국방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과업을 관철할 방안을 논의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조선과학기술총연맹은 27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제54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과학기술 위력으로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 과업과 방도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조선민주여성동맹도 평양에서 제7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김정은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을 결사 관철하자”고 다짐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공식 매체는 일제히 ‘신년사를 자자구구 뼈에 새기라’고 독려하면서 각 기관과 조직의 신년사 학습 열풍을 소개하고 있다. 
북한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평양시 군중대회에 모인 북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공식 매체가 전한 분위기와 달리 북한 주민 반응은 싸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이 해마다 강요에 의해 신년사를 외우고 있지만 신년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보도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이 방송에 “‘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올해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고 새해 아침부터 요란을 떠는데 1년 동안 온갖 주민동원에 끌려 다닐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고 털어놨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은 해마다 신년사에서 ‘강성국가’, ‘경제강국’과 같은 거창한 구호들을 외치고 있지만 인민생활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며 신년사에서 뭐라 주장하건 인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년사로 인해 당국과 주민간 마찰이 빚어진다는 얘기도 들린다. 함경북도의 다른 소식통은 이 방송에 “신문을 보는 가정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동사무소에서 컴퓨터 인쇄기로 ‘신년사’를 찍어 보급하려 했다”며 “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돈(인쇄비)을 요구해 주민들이 집단 반발해 자칫 폭력사태로 번질 뻔 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지난해에 혼이 났는지 올해엔 동사무소에서 인쇄해 배포하는 짓은 못하고 있다”며 “수십 년을 두고 들어도 꼭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신년사’를 누가 관심을 갖고 살피겠는가”라고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