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서강준이 제대로 물 만났다. 다수 작품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뭔가 부족했던 2%를 이번에 채워 넣었다. 서강준은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에서 과거 피아니스트 유망주였지만 그 꿈을 잃고 방황하는 백인호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겉으로 껄렁대고 반항기 넘치지만 좋아하는 홍설(김고은 분)을 무심한 듯 챙기는 '츤데레(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따뜻하다는 뜻)'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하지만 원작의 백인호와 서강준의 싱크로율을 지적하는 치어머니(치인트+시어머니)의 반응에 남모를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는 솔직하게 당시 마음을 털어놨다.
"치어머니가 초반에 무서웠어요. 캐스팅 기사가 나올 때 반응을 보고 견뎌낼 자신이 없었어요. '쟤가 왜 백인호야' '화정 연기 못 봤느냐' 등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반응을 불식시킬 자신은 안 생기더라고요. 소심하고 내성적인 제가 백인호를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고민했던 시간이에요. 지금은 시청자들이 잘 봐주셔서 뿌듯해요. 남은 마무리를 잘해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서강준은 백인호 역에 젖어들기 위해 넘치는 의욕을 내려놨다.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덜어내라는 이윤정 PD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윤정 감독님이 의지와 욕심이 너무 많다고 버리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죠. 자유분방한 캐릭터라 자신을 내려놓고 현장에서 캐릭터에 녹아드는 과정이 캐릭터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웹툰 속 백인호를 따라 하기보다 서강준만의 백인호를 구현해 내고자 노력했다고.
"백인호 성격은 제 안에 있는 모습에서 끄집어 내려고 했어요. 대본을 보면서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화났다면 어떤 마음일까 상상했어요. 제 입장을 백인호에 대입해 이해하고 연기한 거죠."
'치인트'는 반(半) 사전제작 드라마로, 이미 모든 촬영이 완료된 상태다. 쪽대본 등 시간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캐릭터와 작품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시청자의 실시간 반응을 모른다는 어려움은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장점이었어요. 무엇보다 시간 부족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서강준은 유승호, 박보검 등과 함께 훈훈한 외모와 연기력이 빛나는 1993년생 라인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강준의 '치인트' 출연 이후 93년생 라인은 더욱 막강해졌다. 그는 최근 이들과 93라인으로 조명받는 것에 대해 "신기하다"고 말했다.
"유승호, 박보검씨는 저랑 동갑이지만 배울 점이 참 많아요. 두 사람에 비해 전 아직 부족한 점이 많죠. 유승호씨가 나온 SBS '리멤버'와 박보검씨가 출연한 tvN '응답하라 1988'을 찾아보고, 직접 연기도 따라하면서 배워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강준에게 '치인트'는 앞으로 배우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줄 소중한 작품이다. 서강준을 만난 1월22일은 '치인트' 마지막 촬영을 하루 앞둔 저녁.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연기를 이야기하는 내내 눈빛이 반짝였다.
"제가 하는 연기를 직접 보면서 한번 꼬아봐요. 엄격해지는 편이죠. 이번 연기가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데 중요한 의미로 기억될 것 같아요."
"그동안 누군가 작품을 시켜서 한다기보다 제 의견을 반영해 쉬지 않고 해왔어요. 연기가 직업이 아닌 꿈이자 목표로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조금씩 발전해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껴요. '치인트'를 끝으로 소속사에서 휴식 시간을 준다고 약속했거든요. 머리를 비우는 일주일이면 족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휴양 다녀 오고 싶어요."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