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이면서도 상고사 연구에 앞장서온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기획국장 이찬구 박사(60, 전 가톨릭대 외래교수)가 동이족(한국, 중국, 일본)의 선 조상으로 알려진 환국(桓國)의 역년(歷年, 존속 연대)을 밝히는 강좌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또 재야사서(在野史書) ‘환단고기(桓檀古記)’ 가운데 ‘삼성기(三聖紀) 하편’을 저술한 원동중(元董仲)의 정체도 밝힌다.
이 박사는 오는 13일 오후2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겨레얼살리기 국민운동본부에서 열리는 ‘원동중 삼성기 63,182년의 과학적 이해-인류시원 문화의 비밀코드’ 주제의 강좌에 앞서 9일 인류시원역사 연구에 관한 전모를 털어놨다.
-전설로 여기는 인류시원 역사를 굳이 밝히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생인류(인류의 직접 조상), 즉 호모사피엔스는 대체로 3만~5만년 전 경에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는 만달인, 승리산인, 상시인 등의 현생인류 화석들이 나타난다.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의 벽화로 유명한 크로마뇽인은 1만~4만5천 년 전의 후기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우리와 같은 인류들이다. 인류는 수만년 전에 이미 문화의 형태는 다르지만 세계 도처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4만~3만년 전 한반도 평안남도에 거주했던 승리산인 복원도. |
그럼에도 우리는 4천여년 전의 단군이 사실(史實)이냐 가공의 인물이냐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개천절이 무색할 정도다. 단군이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요인은 실증사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제시기에 왜곡된 식민사관이 남긴 폐해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식민사관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단군이전의 민족사 또는 인류의 시원역사를 밝히는 것이 오히려 단군이해에 쉬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야사서에 대해 허황되거나 미덥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삼성기’라는 책에는 인류사의 존속연대를 63,182년이라고 기술한 곳이 있다. 이런 역년을 허탄하다고 비난하지 말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현대과학의 여러 정보들이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역사교과서를 보면 잘 나와 있지 않은가.
“‘환단고기’나 ‘부도지’는 우리 민족과 인류의 상고사에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면에서 값진 문헌이다. 이들 책들이 교과서가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를 보완해주고, 시원역사에 대한 갈급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재야사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관점이 중요하다. 현존하는 어느 역사책도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100% 정확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대의 문헌이라도 권력에 의해 왜곡된 사서들은 무수히 많다. 사실의 진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모든 사서들은 진위의 감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재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턱대고 좋아하고 싫어하기보다는 사실분석과 재해석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부족한 부분은 과학에 의존해 유익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역사는 뜻을 얻을 때 살아 움직이며, 재해석을 통해 진일보한다.”
1만5천년 전에 제작된 알타미라동굴 벽화. |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에 의하면 우리 환국(桓國, 기원전 7,197년에 환인이 세운 국가)의 존속연대가 3301년인지 혹은 63,182년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연대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 송대(宋代) 유학자 소강절(邵康節)이 해명한 ‘황극연표’를 대조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63,182년은 소강절이 말한 선천개벽의 개시연도인 B.C. 67,017년 보다 61년이 이른 곧 B.C. 67,078년을 의미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다시 말해 ‘삼성기’는 인류역사의 처음을 나반과 아만이 혼례를 이룬 B.C. 67,078년(계해)으로 설정했다. B.C. 67,078년은 제4빙하기가 시작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또한 현생인류가 아프리카를 넘어 아시아로 이동한 시점과도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과학이 제공한 정보로 확인할 수 있다.”
이찬구 박사는 “인류의 시원역사를 밝힌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돌아볼 수 있게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원동중은 고려말의 학자 원천석(元天錫)이 맞다. 조선후기 사상가 최익현이 쓴 ‘면암집(勉菴集)’에 “운곡(耘谷) 원천석이 기록한 것을 선배들이 모두 동사(董史)에 비유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이를 근거로 원천석과 원동중이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원동중은 소강절보다 300년 뒤에 태어났다.”
정성수 문화전문기자 tol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