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직장인 손모(45)씨는 고등학생 딸(17)의 학비와 등록금이 두 달째 미납 상태라는 학교 측 통보를 받고 은행을 찾았다가 말문이 막혔다.
딸 명의의 통장 내역을 살펴 보니 ‘GOOGLE(구글)’이라는 이름으로 8∼11월 넉 달 동안 1000원에서 10만원까지 3000건가량이 결제됐다. 금액은 무려 7300만원에 달했다. 딸이 여름방학 때 A사의 유명 모바일게임에 빠졌다가 게임 속 이벤트를 가장한 ‘도박’의 덫에 걸린 결과였다.
게임 개발업체 A사가 서비스 중인 한 게임 내에서 이벤트 형태로 진행 중인 미니게임 화면. 12세 이용가인데도 룰렛, 블랙잭, 슬롯머신 등 도박과 유사한 게임이 서비스되고 있다. 손씨 제공 |
딸이 학원비와 용돈 등 생활비가 떨어지거나 부족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였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카드 계좌에는 아내의 사망 보험금을 포함해 1억원가량의 돈이 들어있었다.
손씨는 ‘가정 환경 탓에 게임 중독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어 딸을 다그치기보다는 정신과로 데려가 상담했다.
손씨 딸은 “게임에서는 달러화로 표시돼 있어서 이렇게 금액이 커지는지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손씨는 해당 게임이 ‘12세 이용가’인데도 게임 속 이벤트 게임이 도박 형태를 띠고 있는 점을 들어 A사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A사는 현재 전자상거래법 위반, 사기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손모씨의 고등학생 딸이 A사 게임을 이용하면서 7300여만원을 결제한 통장 내역 일부. 손씨 제공 |
18일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접수된 전체 분쟁사건(3550건) 중 미성년자 결제 사건이 1012건(28.5%)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청소년 이용가 등급을 받은 게임 내에서 운영되는 도박 게임이다.
손씨 딸이 즐긴 A사 게임의 경우 탱크가 등장하는 전쟁 게임이라는 기본 내용과 무관하게 슬롯머신, 룰렛, 블랙잭 등 도박 룰이 적용된 미니게임을 이벤트 형식으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게임물의 제작 주체·유통과정 특성 등으로 사전 등급분류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구글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 등 주요 오픈마켓(개인·소규모 업체가 직접 상품 등록해 판매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게임 등급을 자체 분류토록 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후 모니터링으로 행정조치를 하고 있지만 인력난 등으로 실효성이 낮은 실정이다.
오픈마켓을 통해 유통된 게임 수가 연간 50만개에 달하지만 모니터링 대상은 5만개에 그치는 게 단적인 예다. 모니터링 요원도 지난해 처음 40여명이 충원됐다.
게임물관리위 관계자는 “게임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푼 자체등급분류 제도가 2011년 시행된 이후 인력 확대와 포상금 제도를 활용한 단속 실효성 강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후 제재라는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