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필리버스터가 47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는 점, 이 과정에서 최장시간 발언 기록이 깨지는 등 이목을 끌었다는 점은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선 필리버스터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가운데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인식이 짙어졌고, 필리버스터의 명분인 테러방지법 수정이 불발된 채 흐지부지 끝나 역효과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야당에 본회의장 발언대를 내주었던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에 대한 집중 조명으로 더민주가 이득을 본 듯하지만, '침묵하는 다수'는 오히려 새누리당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은 법안 처리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민생 정당', 더민주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민생의 발목을 잡는 정당이라는 프레임이 굳어져 여당에 유리한 구도로 흐르면서 '야당 심판론'이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4·13 총선은) 경제를 살리는 정당과 경제활성화를 막는 정당의 싸움"이라며 "누가 과연 민생을 챙기는 정당인지 똑똑히 국민께서 인식하시고 심판하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야당이 필리버스터에 돌입한 지난달 23일 이후 실시된 한국갤럽의 2월 마지막 주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42%로 1주일 전과 같았고, 더민주 지지율은 20%에서 19%로 빠졌다.
김재원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더민주는 '유능한 경제정당'이라는 프레임으로 총선에 임하려고 하는데, 너무 국정 발목 잡기에만 매진했다는 인상도 함께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다만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야권 지지층이 결집된 데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이날 '야권 통합'을 제안하는 등 이번 총선이 야당발(發) 판도 변화에 휘둘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내비쳤다.
원유철 원내대표가 "(더민주 박영선 의원이 토론에서) '이번 총선에서 표를 모아달라'고 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며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총선을 위한 '선거버스터'"라고 목청을 높인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필리버스터라는 '끈'으로 야권이 묶이는 모습"이라며 "여야가 각자의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이념의 테두리' 역할을 했지만, 득실을 따지면 야당이 더 얻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더민주 내부에선 필리버스터 정국을 주도함으로써 오랜만에 야권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총선을 앞두고 전통적 지지기반을 다지는 효과도 거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기준 원내대변인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치에 관심이 덜했던 야권 성향 시민이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예상 밖의 호응이 나오면서 당내 분위기가 고무되기도 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폭력을 동원해 법안을 막는 이미지를 벗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며 "새누리당도 내홍 탓에 야권의 필리버스터를 체계적으로 비판하지 못해 중도층 민심 이탈이 최소화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필리버스터를 마치는 과정에서 찬반이 부딪히는 등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김종인 대표는 "원내대표가 이 선거판을 책임질 것이냐"며 필리버스터 중단을 촉구했지만, 조국 전 혁신위원은 "오른쪽으로 순항하기도 전에 '역풍'이 왼쪽에서 불어올 것"이라며 반대했다.
이런 시각차를 반영하듯 우윤근 비대위원이 YTN 라디오에서 "(필리버스터 지속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현실론이 있었다"고 한 반면, 은수미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이렇게 함부로 중단하면 누가 우리에게 표를 주겠나"라고 했다.
떠들썩하게 필리버스터를 해 놓고 결국 테러방지법을 한 글자도 고치지 못한 채 물러선 데 대해 '야당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지지층의 반발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김 원내대변인은 "시민·사회단체나 젊은 지지층에서 이번 중단 결정에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이런 지적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야권의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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