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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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김구선생 망명 지원한 단둥 이륭양행

우리는 역사에 대해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을 부르짖던 선조들의 얼이 서린 근대 유적지가 이제 하나둘 잊혀 가고 있다. 중국 만주와 상해 등에 흩어져 있는 항일독립전쟁의 흔적들은 중국의 현대화에 맞물려 자취를 찾기 어렵게 되는 곳이 늘어간다. 중국 내 항일유적지와 열사들의 항쟁지를 발굴 소개하는 일은 지난하지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 지면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중국 단둥시 흥륭가 25번지. 지금은 중국 단둥시 건강교육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건물로 알려진 곳이다.

1919년 5월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가 중국 단둥에 설립한 무역선박회사로 비밀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을 수행한 이륭양행(怡隆洋行)이 있었던 자리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륭양행 자리로 알려진 흥륭가 25번지. 지금은 단둥시 건강교육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륭양행에서는 독립운동가의 망명, 독립자금 모집, 무기 반입, 연통제 운영 등의 역할을 맡았다. 백범 김구선생도 3·1운동 직후에 단둥을 지나 이륭양행이 운행하던 계림호를 이용, 상해로 망명했다. 당시 상해로 가는 방법은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안둥(지금의 단둥)에서 배편으로 건너는 것이 유일한 경로였다.

정보가 사전에 누설되면서 실패하기는 했지만, 의친왕 이강의 망명 시도도 이륭양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륭양행 건물에 대한 새로운 논의는 2009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 90주년 학술회의 주제발표자로 나선 다롄대 유병호 교수가 새로운 위치와 건물을 공개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유 교수는 “중국 단둥시 당안국(문서관리부서)이 2006년 비공개로 펴낸 ‘심조단둥선위인지적역사(尋調丹東鮮爲人知的歷史·단둥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역사를 찾아서)’ 내용을 입수한 결과 이륭양행이 단둥시 해관(海關·무역 세관) 인근에 있었으며 1945년 이후 단둥시 제1경공업국으로 사용된 건물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실제 이륭양행 건물은 압록강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던 3층짜리 서양식 회색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1996∼97년쯤 철거된 뒤 고층 아파트 단지 인근의 홍리취성시중심공원(鴻利聚城市中心公園) 일부로 변해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유 교수의 주장이 제기된 뒤에도 이륭양행의 정확한 위치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이륭양행의 위치는 단둥시 흥륭가였다는 것뿐이다.

<자료:작가 최범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