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어… "나가기가 겁난다"

툭하면 터지는 '묻지마 범죄'에 시민들 불안감 호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돼요.”

서울 양천구의 주택 밀집지역에 사는 회사원 김모(29)씨는 얼마 전부터 심야 퇴근길에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주택가 골목길을 지날 때 자신도 모르게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는 것이다. 김씨는 “예전엔 누가 따라와도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요즘 워낙 흉악한 사건이 많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인 나도 이런데 여성의 불안감은 얼마나 더 클까 싶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피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상황에서 범행 동기를 알기 힘든 ‘묻지마’ 식 강력범죄가 잇따라 시민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이들 범죄가 주로 방어력이 약한 여성이나 노인을 상대로 일상생활 공간에서 벌어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 논의를 위한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29일 수락산 등산로에서 등산객 A(64·여)씨를 살해한 용의자 김모(61)씨를 피의자로 특정하고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0일 밝혔다.

2001년 강도살인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지난 1월 출소한 김씨는 경찰에서 “A씨와 알지 못하는 사이”라며 “산에 새벽에도 사람이 다니나 궁금해서 올라갔는데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노원구 상계동에 지난 16일 왔고 같은 날 상계동의 한 시장에서 과도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가 무작정 A씨를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강도나 강간 등 다른 범행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살해한 것인지를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서울경찰청 범죄행동분석관(프로파일러)도 투입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5일 부산에서는 50대 남성이 도심 대로변에서 1 길이의 가로수 버팀목을 뽑아 여성 2명을 마구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혼잡한 퇴근길 지하철에서 40대 남성이 “침을 뱉지 말라”는 환경미화원의 말에 격분해 지니고 있던 흉기를 휘두르다 붙잡히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치안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화장실에서 사고 나면 ‘화장실 고쳐야 한다’, 등산로에서 사고 나면 ‘등산로 고쳐야 한다’는 식의 대증적이고 단발적인 대책만 나와서는 안 된다”며 “경제개발 3개년 계획처럼 ‘치안안전 확보 3개년 계획’ 식의 중장기적 호흡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날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를 열고 정신병원 입원을 요청할 정신질환자의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등 정신질환자 범죄에 적극 대응키로 했다. 경찰은 ‘흉기를 소지하거나 다른 사람을 지속적으로 폭행·협박하는 등 명백하고 긴급성이 인정되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정신병원 응급입원 요청 등의 조치를 할 방침이다.

김선영·이창수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