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까지 사주시길래 그냥 얻어먹고 집에 가기는 싫었습니다. 자리에서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같이 보고 난 후, 잘 들어가시라며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계속 만나자고 연락하시길래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나중에 문자메시지 한 통을 보내셨더군요. 언제 비행기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른다면서, 잘 지내라는 인사였습니다.
2년 전, 제 인생 첫 소개팅이었습니다. 기사를 보니 문득 그때가 생각나더군요.
대놓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암묵적인 거절도 그렇고. 소개팅 상대방을 어떻게 거절하는 게 최선일까요? 사기범죄만 없다면 정말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이 더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5월14일 기사 <[김기자와 만납시다] "소개팅 시켜달라고 하지 마라, 진짜">를 보고 첫 소개팅이 생각났다며 스튜어디스 최모(27)께서 보내주신 사연이었습니다. 성비 불균형과 스케줄 근무 등 이성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접한 소개팅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해집니다. 사연을 보내주신 여성분께 감사드립니다.
경기도 고양시 흥국사에 남녀 스무명이 모였다. 모두 미혼. 출신지도 다양했다. 출근을 고민하다 온 사람도 있었다. 황토색 법복 차림으로 설법전(흥국사 법당)에 앉은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과 대한불교 조계종 흥국사가 주관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만남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고, 미혼남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시행하는 2016년 보건복지부의 ‘인구교육활성화 지원사업’이다.
사찰순례, 참선, 스님과의 차담, 연꽃 만들기, 탑돌이, 108배, 단주 만들기 등 본연의 템플스테이에 ‘만남’이라는 두 글자를 얹었다. 남녀 비율을 1대1로 맞춘 것도 그 이유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이명길 연애코치가 진행하는 연애특강도 들어있다. 나를 찾는 동시에 죽었던 연애세포를 깨워 평생 짝도 찾자는 의도다. 실제로 ‘만남 템플스테이’ 참가자 중 일부는 결혼에 골인했다.
앞서 복지재단 관계자는 “만남 템플스테이는 여가생활이 부족한 미혼남녀의 힐링은 물론 새로운 인연까지 만들 좋은 기회”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좋은 날씨에 좋은 분들과 함께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떠날 때는 아쉬움을 느낄 만큼 알찬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결혼이나 연애를 생각해볼 틈이 없었어요. 좋은 인연도 만들고, 이런저런 생각도 해 볼 기회를 찾아 오게 됐네요.”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주변 사람들이 만남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그는 “워낙 연애나 결혼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밝히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일부 참가자는 주변 사람들이 ‘알려줘서’ 오게 됐다고 계기를 밝혔다. 대부분 부모나 직장동료다. 모두 인터넷에서 소식을 접하고는 참가자들에게 귀띔했다고 했다.
출발 전까지 고민한 사람도 있었다. 일 때문에 회사에 나가야 하지만, 좀처럼 잡기 힘든 기회가 온 탓이다. 회사 모임에 빠지고 왔다던 참가자는 자기 처지를 이해해 준 ‘윗분’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이성과 5분간 서로 손을 잡고 인사한다. 평소에는 짧지만 이들에게는 어쩌면 길게 느껴졌을 5분. |
수줍음과 웃음으로 가득했던 자기소개가 끝나고 이 코치의 강의가 이어졌다. 약 두 시간 진행된 강의 이름은 ‘FunFun한 연애 Feel살기’.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 보고 인사하는 것으로 강의가 시작됐다. 게다가 왼손까지 서로 잡았다. 한 사람이 아닌 전부 돌아가며 인사하는 방식이다. 남성 혹은 여성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이성을 만나는 식이다.
분위기는 밝았다. 자기소개로 이미 민망함을 벗어던진 뒤라 참가자들 마음이 편해 보였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주고받는 서로의 눈빛은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느낌이다.
이 코치가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비 오는 날 건널목에서 신문지로 머리 가린 이성을 보면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던 참가자들은 “쭈뼛쭈뼛 다가갔지만 용기를 내 ‘함께 쓰자’고 했던 남성의 청에 여성이 흔쾌히 응했다”는 답변을 듣고는 감탄했다. 용기 있는 사람이 인연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한 사람이 눈 감은 채 펜을 잡는다. 상대방이 방향을 지시한다. 선을 넘지 않고 좁은 길을 빠져나가야 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다. |
저녁 공양 후, 연꽃등 만들기 시간에도 분위기는 밝았다.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집중하니 어느새 등불이 손에 들렸다. 참가자들은 두 줄로 선 채 마당 탑을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었다.
취침 전까지 약 한 시간 진행된 티타임으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공양간에 모여 대화하는 동안 참가자들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약간의 과일과 차로도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가능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흥국사의 첫날밤은 깊어갔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