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은 매우 간단하다. 원숭이 두 마리에게 동일한 과제를 수행케 한 후 서로 보고 있는 상태에서 보상을 해준다. 두 마리 모두에게 오이를 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원숭이가 포도를 보상받은 것을 본 또 다른 원숭이는 오이를 받자 그 오이를 먹지 않고 오히려 실험자에게 내던지는 행동을 보였다.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도 원숭이는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이 실험은 영장류가 공평하고 올바른 성질인 ‘공정성’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시도로서 이후 개, 조류, 침팬지,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많은 영장류의 공정성 평가의 객관적 패러다임으로 반복되거나 변형돼 검증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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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
반면, 인간이라는 종(種)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역사적인 고찰을 통해 인류의 문명화 과정을 보여준 유발 하라리 박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에 대한 동정이나 이성적인 측면을 부정한다. 인간은 매 순간 자신에게 안락하고 즐거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주는 타인과 환경, 그리고 미래에의 영향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라리 박사는 이 과정에서 인류는 발전하고 강력해지고 편안해지지만 다수의 인간은 그로 인해 고통 받고 괴로워하게 되며 더 행복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방향도 모르고 책임감도 없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필자는 2001년 9·11 테러사건이 보여준 극단적인 이기주의 집단의 대량 인명살상 이후 살면서 이보다 더 이상의 놀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보이는 계층 간 격차의 심화, 인종 차별, 종교적 견해 차이로 인한 불화를 비롯해 최근 우리로 하여금 촛불을 들게 만든 것은 이러한 일들이 끝이 아닐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하라리 박사가 주장하듯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대해 알려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공정성의 본질과 분배 방법에 대해 알고 태어났다는 드발 박사의 주장은 적어도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제시해 준다. 그래서 더 믿고 싶고, 더 기대고 싶고, 더 마음이 기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 각자가 공정성을 잘 인식하고 발휘하는 동시에 인간이 가진 이기주의적 공격성과 경쟁심을 잘 통제하도록 스스로를 훈련하고 후세대를 교육하는 일이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혹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주변의 조언과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실수를 유발하지 않는 환경을 마련하고, 기존 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모두가 규칙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올해는 유난히도 힘들게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우리를 지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희망을 보면서 갈 길이 멀지만 힘을 얻게 된다.
정경미 연세대 교수·임상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