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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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재앙, 이제는 현실… 예방 넘어 적응력 고민해야”

[세계일보 설립자 탄신·기원절 4주년 기념] ICUS 참석차 방한 메도스 박사 "막연한 해결책 제시하기엔 너무 늦어, 임계점 넘어… 당면한 현실 바라봐야" / "근본적 문제는 통제되지 않는 성장… 자원 고갈 위기 먼 훗날의 얘기 아냐" / "지구적 노력·개인적 노력 구분 필요… 후손들 위해 작은 노력도 실천해야"
‘집에 연못이 있다고 가정하자. 연못에 수련이 한 송이 자라고 있다. 수련은 날마다 크기가 두 배로 자란다. 만일 수련이 자라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30일 안에 수련이 연못을 꽉 채워 그 안에 사는 다른 생명체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처음에는 수련이 너무 작아서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29일째 되는 날 수련이 연못의 반을 덮었다. 아직도 연못의 반이나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1972년 발간된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는 이같이 묻는다.

자원고갈, 기후변화, 인구감소 같은 지구촌 위기가 ‘먼 훗날’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라는 경고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데니스 메도스 박사의 눈에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이제 수련이 연못을 덮고 말았다는 점이다.

4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데니스 메도스 미 뉴햄프셔대 교수가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환경 위기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남제현 기자
그는 “곳곳에서 성장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기후변화 문제는 현 세대의 노력과 상관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기상기구(WMO) 발표에 따르면 전 지구 이산화탄소 연평균 농도는 400ppm으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산업화 전(278ppm)과 비교해 40%나 늘어났다.

메도스 박사는 “온실가스는 한번 공기 중으로 배출되면 종류에 따라 최대 150년까지 대기에 머문다”며 “지금까지 대기에 쌓인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로 온난화가 시작됐고, 이제 우리가 해결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일갈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며 북극 빙하가 녹았고, 그런 탓에 태양열 흡수가 늘어 지구 기온이 더 올라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구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 저희 아버지가 굉장히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고열과 두통,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 그때마다 증세를 치료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근본적인 문제는 암이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위기는 하나의 증세입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통제되지 않는 성장인 것이지요.”


그는 “끊임없이 더 생산하고 소유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절대로 성장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덜 쓰고, 덜 만드는 삶이 물질적 풍요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메도스 박사는 “50년, 100년 전에는 아이폰도 없었고, 나이키 운동화도 없었다. 우리가 이런 걸 갖게 됐다고 해서 과연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사람의 소유욕이 과연 인간의 본성인지, 산업사회가 부추긴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세대에게 시급한 문제는 기후변화, 자원고갈, 인구감소 등의 문제에 적응력을 기르는 것”이라며 “예방 시기를 놓쳤다면 적응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 원년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는 어떤 시점에 오면 인구 감소를 겪기 마련”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까지 우리는 ‘다수의 젊은이와 소수의 고령자’를 기본으로 사회체계를 만들어왔지만, 이제 이런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의 한계’가 나오기 전에도 인류의 위기를 경고한 책은 많았다. 식량 증가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맬서스의 ‘인구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성장의 한계는 처음으로 ‘월드 3’라는 컴퓨터 모델로 다양한 가정에 따른 미래 시나리오를 내놓음으로써 지구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성장이 절대명제인 경제학자와 기업가들은 불편해졌다. 과학의 탈을 쓴 ‘종말론’이라는 비아냥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덴마크 등에서 최신 모델과 자료를 활용한 실험에서도 45년 전과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서 성장의 한계는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2009년 호주연방과학원(CSIRO)은 성장의 한계가 예측했던 인구·환경·경제 분야의 각종 지표와 실제 데이터를 대조해봤는데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성장의 한계는 1992년과 2004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최신 결과를 반영해 네 번째 판을 낼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 목적은 예상가능한 위기와 인류의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까지 이런 노력은 통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보십시오. 이미 우리는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더 이상 책을 쓸 이유가 없죠.”

메도스 박사는 계속 경고음을 울리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을 때라고 했다. 그 출발은 용어를 바로잡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를 ‘하드 테크놀로지’와 ‘소프트 테크놀로지’로 나눠 과학기술 같은 물리적인 부문뿐 아니라 소비 문화, 사고의 전환 같은 정신적인 것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지구적인 문제’와 ‘보편적인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 문제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지구적인 문제라면 대기오염은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예를 들어 서울 시민이 운전을 덜 한다고 지구촌의 기후변화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공기 질은 훨씬 좋아지겠죠.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글로벌한 것인지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메도스 박사는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화석연료 대신 미국 보스턴 집 주변에 있는 나무를 직접 캐와 난방을 한다고 했다.

“태양열도 쓰고 있고, 마을에 텃밭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유기농 채소를 재배합니다. 채식주의자이고, 훌륭한 환경 기사를 쓴 언론사에는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메도스 박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안타깝게도 지구는 인간의 착취를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 왔지만, 지구의 미래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갈 후손을 생각하면 작은 노력도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