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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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100년… ‘생지옥’과 대면하다

해저탄광 ‘군함도’로 끌려온 조선 노동자들
50~60㎝ 막장서 누운채 석탄캐며 지옥 생활
진실은 가려진채 이곳은 세계유산으로 등재
‘1945년 9월 조선 사람들이 탄 귀국선이 때마침 덮친 태풍의 거친 파도에 전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미쓰비시 조선소의 백만톤 도크의 대형 크레인 부근에 엄청난 수의 조선인 익사체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이 어렵사리 오른 귀국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본 정부가 끌고 갔으니 조선으로 돌려보낼 책임도 그들에게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조선인들은 스스로 배를 빌려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죽어간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군함도’라 불리는 섬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원폭 피해자 2∼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군함도 현장을 찾아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강제동원 과정 등을 직접 취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조선인 수용소가 있던 북쪽에서 바라본 군함도. 이 섬에는 1916년 미쓰비시가 세운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생각정원 제공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함도의 본래 이름은 ‘하시마’다. 야구장 2개 크기의 이 섬에는 1916년 미쓰비시가 세운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멀리서 보면 건물들의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도 불리는 이 섬에는 해저탄광이 있다. 미쓰비시는 이곳에서 조선과 중국에서 강제동원한 노동자들을 동원해 석탄을 캤다. 일본은 군함도가 ‘비(非)서구지역에서 최초로 성공한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동했다는 사실은 숨겼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군함도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며 유네스코 등재를 막았지만, 2015년 군함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당시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의 수는 군함도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책은 1943∼1945년 500∼800명의 조선인이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중에는 14∼15세의 소년들도 포함돼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군함도까지 끌려간 이들은 고된 노동과 배고픔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징용자가 갱 안에 누워서 탄을 캐고 있다.
이들이 일한 해저탄광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일본인들은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일했지만, 조선인들은 높이가 50∼60㎝밖에 되지 않는 좁은 막장에서 거의 누운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석탄을 캤다. 화장실이 없는 갱에는 지하수가 배설물로 오염돼 있었는데, 마실 물이 부족했던 조선인들은 이 물을 식수로 마셨다.

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모진 고문은 일상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본보기를 보이겠다며 매일 2∼3명의 조선인을 광장에서 가죽 허리띠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렸다. 의식을 잃은 조선인에게는 바닷물을 퍼붓고 지하실에 가두었다가 다시 일을 시켰다.

이곳에도 여성 위안부가 있었다. 갱부들의 가동률을 향상시키고, 도주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3개의 기업 위안소를 운영했다. 여성 위안부 중에는 조선인도 있었다. 사망자 기록에는 조선인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의 조선인들은 사방이 바다라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었다. 편지도 쓸 수 없었고,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군함도의 노동자들에게 군함도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지옥과 같았다.

이 책은 현장 취재와 인터뷰, 피해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일본의 강제동원 100년의 역사를 정리했다. 일본 전역에서는 일본의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 하이난에서 태평양 파푸아뉴기니까지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거나 강제 동원돼 노동해야 했다.

조한성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면서 “우리는 이 책으로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