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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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한 걸음씩 결승점을 향해

몇년 만에 찾아온 긴 추석 연휴로 인천공항 이용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한다. 여행은 단순한 휴식과 즐거움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재충전을 통한 새로운 결심을 위해 떠나기도 한다.

여러 여행지 중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를 찾아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총 800㎞로 40일 남짓 걸리는 많은 사람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 전용숙소인 알베르게에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는 올해 다녀온 사람들의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길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제주도 올레길의 모태가 됐다는 이 길은 대단한 볼거리를 위한 것이 아닌 발에 물집이 생기고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도 계속 걸어야 하는 고행에 가까운 도보여행지이다. 나를 찾기 위해서거나 각자 극복해야 할 이유가 있어 이 길을 찾는다는데 완주하는 사람은 도전자의 15%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 길과 관련된 책, 동영상, 영화도 상당히 많다. 그중 영화 ‘나의 산티아고’(감독 줄리아 폰 하인츠)는 독일의 인기 코미디언이자 가수인 하페 케르켈링의 체험을 기록한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가 원작이다. 영화 자체는 구성도 단순하고 드라마틱한 임팩트는 약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걷는 것처럼 보여줘 간접체험을 톡톡히 시켜준다.

영화는 전성기를 맞은 하페(데이비드 스트리에소브)가 과로로 쓰러져 3개월 동안 절대 안정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가 고심 끝에 선택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시작부터 폭우가 쏟아지고, 알베르게에서는 빈대가 나오는 등 어려움투성이로 불만도 많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로 인해 서서히 변화해 간다. 딸을 잃은 아픔을 겪은 스텔라(마티나 게덱)는 이 길은 혼자 걸어야 된다며 먼저 길을 떠난다. 산길 들길을 묵묵히 걸으며 하페도 진정한 자신과 만난다.

1㎞를 채 가기 전에 보게 되는 조개 모양이나 노란 화살표만 따라 가면 되는 순례길, 인생도 그렇게 명확하게 안내해 주는 지표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줄겠는가. 지표를 보며 한 걸음씩 걸어서 800㎞를 가듯이 우리 인생길도 한발 한발 걸어서 완주하는 것이다. ‘길이 끝나자 여행은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진정한 여행은 한 걸음씩 결승점을 향해 가는 우리 자신의 삶인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