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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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번엔 유골함마저 막고 "돈 내라"…울어버린 유족들

충남 장의차 통행료 갈취사건이 부여군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엔 500만원을 요구하는 마을간부들의 과한 요구에 “불구덩이에 넣지 말라”는 부모의 유언을 어기고 화장할 수밖에 없었던 7남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특히 이 마을간부들은 1주기를 맞아 작은 유골함을 고향 선산에 묻으려는 장지까지 찾아와 고압적인 자세로 행패를 부리며 돈을 내라고 유족을 닦달했다.

지난 8월20일 오전 10시40분쯤 부여군 임천면 K 마을에서 700여m 떨어진 야산. 임모(44·충북 청주시)씨 형제자매 10명은 지난해 9월 26일 별세한 뒤 화장, 유골을 공주나래원에 모셨던 아버지(당시 92세·부여읍)의 유골을 고향 뒷산에 안장하기 위해 어머니 묘소 옆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지난해 9월 28일 충남 부여장례식장에서 임모(당시 92세·부여읍) 씨 장례식을 치르고 공주나래원에서 화장한 뒤 유골함을 그곳 봉안당에 임시 안치했던 유족이 올해 8월 20일 부여군 임천면 K 마을에서 700여m 떨어진 뒤편 선산에 평장을 했다. 이 자리는 원래 고인의 가묘가 있던 자리였는데, 유족은 인근 주민들의 과도한 기부금 요구 때문에 화장한 뒤 작은 유골함을 안치했다.
유족 제공
유골함이 들어갈 정도의 구덩이가 거의 파였을 무렵 갑자기 지난해 9월 28일 장례 당시 악연을 맺었던 전 마을청년회장 정모(59)씨 등 2명이 나타나 대뜸 “지금 누구 허락받고 모시는 거냐?. 유골함 다시 가져가라. 안 된다”며 고성을 지르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고인의 막내아들 임모(44)씨가 나서 공손하게 “안 그래도 아버지 모신 뒤 인사드리려고 했다”며 인사를 했으나 주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무조건 “유골함 다시 가져가라.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는 싸늘한 답변이 계속 돌아왔다.

유골함을 다시 가져가라고 소리쳤지만 주민들의 속내는 역시 돈이었다. 막내아들을 장지 한쪽으로 부르더니 300만원을 넌지시 요구했다. 지난해 9월 하순 장의차 통과협상 당시 유족 측이 주겠다고 한 금액이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유족은 기가 찼다. 1년 전에 그렇게 통사정을 해도 “절대 안 돼, 500만원을 내라”고 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는데, 이제 가족 몇 명이 유골함 묻는 묘소까지 찾아와서 다시 300만원을 내라고 하는 것에 격분한 유족은 이를 거절했다.

충남 부여군 임천면 K마을 청년회 간부가 지난 8월 23일 기부금을 보내라며 임모씨 유족에게 보낸 농협계좌번호 안내 문자.
유족 제공
곧 양쪽에서 거친 막말이 오가는 큰 말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번엔 유족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고인의 50대 딸 2명이 나섰다. 둘째딸(59·부여읍)은 “다들 너무 하신다. 이게 당신들 땅이냐. 내 땅에 내 부모 모시는 데 웬 참견이냐. 한 줌 재도 고향 땅에 못 묻는다는 게 말이 되냐… 돈에 환장했나?”라며 한 맺힌 목소리를 토해냈다.

1시간 이상 승강이를 벌이다 막내아들이 다시 나서 협상안을 냈다. 그는 주민에게 다가가 “지금은 드릴 돈이 없으니 통장계좌를 보내주면 다만 얼마라도 마을기부금을 보내겠다”고 해 1시간여 만에 겨우 사태를 수습했다.

주민 정씨는 사흘 뒤 자신의 농협 계좌번호를 문자로 막내아들에게 보냈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28일 오전 9시쯤 부여장례식장 내 임씨 빈소에서 막내 임씨가 당시 K 마을 청년회장이던 정씨에게 “우리 지금 올라갑니다”하고 전화로 신고했다. 그러자 정씨가 “어제 합의 본 300만원은 회의에서 부결됐다. 다른 사람들도 다 500만원씩 낸다. 500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며 태도가 돌변했다.

부담됐던 유족은 즉석 가족회의를 연 뒤 결국 매장을 포기하고, 화장해 유해를 공주나래원 봉안당에 모시기로 했다. 뜻하지 않게 화장을 하게 되면서 화장비용과 안치비, 유골함 구입비 등 예상치 못한 비용도 상당액 추가로 들었다.

아버지의 유해가 화로로 들어가자 2남 5녀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화장장은 일순간 울음바다로 변했다.

임씨 유족들은 임천면 K 마을 주민들의 기부금 500만원 요구를 수용할 수 없는 형편 때문에 “화로에 넣지 말라”는 유언을 어길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해 9월 화장 당일 유족은 죄책감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화로에 넣었다. 사진은 임씨 유골이 담긴 유골함이 공주나래원에 안치된 모습.
유족 제공
숨지기 직전 “나는 불구덩이에는 안 들어가련다”고 하신 유언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회한이 몰려온 것이다.

막내 임씨는 “장례 전날 K마을로 정씨를 찾아가 마을발전기금 명목의 통행료 협상을 할 때부터 뭔가 꺼림직했다”며 “제가 작은아버지와 함께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를 갖고 정씨 등 주민대표 2명을 만났는데, 처음엔 무조건 ‘마을에 묘가 들어서면 안 된다’고 하던 그들이 나중에는 장부를 펴보이며 보통 500, 300 등 다들 이렇게 기부한다고 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때 형편이 여의치 않음을 말씀드리고 겨우 300만원에 합의를 했는데 장례식 당일 오전에 ‘마을임원회의에서 부결됐다’며 은근히 500만원 얘기를 간접화법으로 꺼내기에 앞이 캄캄했었다”며 “아버지 유언 때문에 누나들이 너무 많이 울어 다들 눈이 퉁퉁 부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생시 고인이 끔찍이 아낀 손녀 최모(29·서울 동대문구 장안동·방사선사)씨는 지난 14일 ‘장의차 통행료 갈취사건’과 관련한 세계일보 기사를 접한 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나 당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정리해 17일 청와대 국민신문고와 충남도청 신문고에 올렸다.

부여=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