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열한 시 오십구 분. / 일 분이 지나면 날이 바뀐다. // 날이 바뀌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 바뀌는 날에 기대를 걸어 본다. // 기대를 걸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 언제나 속으며 믿어 본다. // 믿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 시계는 열한 시 오십구 분. // 일 분이 지나면 새 날이 된다.”(박남수, ‘열한 시 오십구 분’) 이 시에서처럼 일 분 차이로 새 날이 되거나 하루 차이로 새해가 되는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 그런 시간은 다른 시간과 같으면서도 달라서 ‘별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나 믿음을 갖게 한다. 시간 자체가 실체가 아닌 이미지이고, 인간의 원망(願望)이 만든 발명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계가 시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시계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연말연시라는 시간에 대해 역발상(逆發想)을 해보자. 매해 반복되는 반성이나 다짐의 시간이 아니라 칭찬과 치하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반성에 대한 반성을 해야 진정한 반성이 가능하고, 다짐을 다지려면 치하가 필요하다.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는 낭비가 아니고 이용하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한 해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당한 일이다. 반성과 다짐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복되는 요구가 억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힘든 한 해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
그렇다면 연말연시를 맞아 제대로 배짱을 부려보자. 이즈음 의례적으로 따라오는 반성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자는 것이다. 시간의 재발견은 발견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발명이다. 그런 시간의 발명을 위해 우선 연말연시를 여느 날처럼 차분하고도 일상적으로 보내자. 연말연시는 365일 중의 하루일 뿐이다. 반복되는 의식(儀式)은 소모적인 의식(意識)에 불과하니까.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노력했기에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일 수 있다. 그토록 수고했기에 최소한 연말연시 때만이라도 오히려 칭찬받아도 되지 않을까. 그럴 자격을 자신에게 부여하자.
그러니 요즘 유행한다는 건배사들 중에서 ‘모바일(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일어나라)’과 같은 미래에 대한 경건한 다짐보다는 ‘박보검(박수를 보냅니다. 올 한 해 검나 수고한 당신께)’처럼 현재에 대한 유쾌한 칭찬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한 사람의 일생이 될 테니까. 그래서 하루라는 시간은 평생보다 길거나 짧지 않다. 연말연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런 평등하고도 일상적인 시간을 우리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발명해야 한다. 오늘도 예외일 수는 없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