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전개되는 것은 북핵과 관련된 핵심 행위자들이 제각기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기 위해 ‘판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 협상에서 과거 정부의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오랜 외교적 고립을 깨고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무대에 등장함으로써 또 다른 판 흔들기로 대응했다. 리비아식 일괄타결 방식에 단계적,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대응한 북·중은 앞으로의 협상과정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이렇게 갑자기 대화로 나오게 된 원인은 대체로 최대 압박으로 초래될 경제적 파국에 대한 두려움, 국가 핵무력을 완성해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자신감, 문재인정부의 적절한 중재 노력이 주효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진정한 비핵화인지, 고립 탈피와 시간벌기를 위한 일시적·전술적 유화전략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당분간은 ‘핵을 가진 평화’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후 미국이 원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 해결해가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단계별로 지루한 협상, 살라미 전술 재등장을 우려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4월을 평화의 달로 만들기 위해 어떤 전략으로 임해야 할 것인가.
먼저, 북한에 대해서는 완전한 비핵화 시한을 분명히 못박는 게 중요하다. 비핵화 최종시한에 합의할 수 있다면 중간경로에 있는 신고·검증·폐기 등 여러 이정표의 일정은 상대적으로 쉽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존 볼턴 안보보좌관 내정자 역시 북한이 시간을 끈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협상을 포기하고 더욱 강경한 대안으로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1기’ 임기인 2020년 정도를 비핵화 시한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기 어렵다는 점을 북한에 설득해야 한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
끝으로, 한·미 간에 북핵 문제 해결의 수준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조율해야 한다. 리비아식 일괄타결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천명한 북·중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CVID와 체제안전 보장의 맞교환 해법을 찾지 못할 경우 다시 북·미 간 대화 결렬 원인을 둘러싼 상호 비난, 적대적 관계로 원상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서조차 북핵 타결 때까지 자유무역협정(FTA) 서명을 미룰 수도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한국이 대북 압박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다. 한국은 단순히 미국과 북·중 사이에서 중재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비핵화에 운명을 건 당사자로 양측 모두에게 선의의 입장에서 실현 가능한 옵션을 도출한다는 생각을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