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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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지켜보는 사람

신미나
지켜보는 사람

신미나

한 알의 레몬이/테이블 위에/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금방/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감아도 레몬은/레몬으로서 있다/깨끗한 진심처럼/
조용하고/단순한 그림자를 만든다

한 알의 레몬이/눈앞에/있다/그것을 치우면/
레몬은/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레몬은/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사실이라고 믿는다/진심으로 보인다

원은희
우리는 눈만 뜨면 무엇이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예쁜 꽃이든, 다 시든 과일이든, 처참한 사건 간에

보기 싫어도 봐야 하고 보고 싶어도 봐야 한다.

여기 하얀 테이블보 위에 노란 레몬이 하나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레몬을 지켜본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조용하고 단순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레몬.

요즘 스승이,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레몬 같은 우리가 혹시 상하지나 않을까?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고 마음을 다해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지켜보는 스승이,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인 오늘,

우리의 레몬 빛 마음을 하얀 백지 위에 담아서 스승에게 보내는 것이 어떨지.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