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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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내면 19금 야동 맘대로"…제재·감시 받지 않는 VR 콘텐츠 시장

[스토리세계-흔들리는 VR업계①-ⓐ] 무등록 VR 콘텐츠 범람…불법유통 실태 심층취재
VR(가상현실) 업계의 가장 큰 시장인 콘텐츠 시장이 병들어 가고 있다. 무등록 콘텐츠의 양산과 불법 콘텐츠 확산, 저작권문제 등으로 공정한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위기를 맞는 양상이다.

흔히들 VR을 4차 산업 혁명의 선두주자라 말한다. 보던 콘텐츠를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VR은 게임 뿐만 아니라 의료와 교육, 군사, 치안 등 사회 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4차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VR 콘텐츠 저작권과 불법 콘텐츠 유통을 심층취재했다.

◆무등록 성인물 콘텐츠도 심의 없이 유통돼

“아들에게 VR기기를 사줬는데 얼마전에 보니 ‘야동’(야한 동영상)과 같은 영상을 보고 있더라구요.”

10대 아들에게 VR기기를 사준 40대 주부 박모씨는 아들이 보는 VR기기를 써보고 깜짝 놀랐다. 성인 콘텐츠였던 것이다.

3일 기자와 만난 그녀는 “황당해서 아들에게 물어보니 ‘스팀에 들어가면 아무런 제재도 없이 돈만내면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게임이나 불법 성인 콘텐츠는 엄격하게 나라에서 제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VR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미비한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VR 콘텐츠 유통은 해외 유통플랫폼인 ‘스팀’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스팀에 VR콘텐츠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큰 자격요건 없이 일정 돈을 내면 콘텐츠를 올리고 이를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팀을 통해 국내 사용자 누구나 무등록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다. 실제 기자가 스팀에 접속한 결과 VR콘텐츠인 ‘KANOJO’(일본어로 ‘그녀’를 의미)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나오는 성인 콘텐츠인 ‘KANOJO’는 개인정보를 통한 생년월일 확인이나 어떠한 제재없이 돈만 내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이 콘텐츠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이 콘텐츠를 소개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10대 여중고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수영복을 입힌 채 목욕을 시킨다거나 교복을 입은 채 만지는 등 장면이 나온다.

이 같은 콘텐츠는 국내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등급심의를 메겨 유통돼야 한다. 하지만 유통플랫폼인 ‘스팀’이 해외에서 운영되다보니 국내법 적용에 한계가 따른다. 즉 해외유통 플랫폼의 경우 등급 심의가 의무가 아닌 것이다.

◆VR테마파크에 무분별 유통된 무등록물

한 VR 개발업체 대표는 “일부 콘텐츠 제작사들은 등급심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해외 유통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출시하고 국내 VR테마파크에 제공한다”며 “제대로 된 제재나 감시체계 없는 상황에서 어떤 개발사가 등급심사를 받는 불편함을 감수 하겠느냐”고 말했다.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이하 KOVACA)에 따르면 협회가 지난 5월1일 국내 VR테마파크를 돌며 조사한 결과 6개의 무등록 VR게임이 무분별하게 제공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 중에는 스페인과 호주에서 제작해 국내 업체가 공급한 경우도 있지만, 실제 국내 업체가 개발한 콘텐츠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국내 게임과 VR콘텐츠의 경우 게임물 관리 위원회에서 제작사에 등급 심의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내에서 검색과 이용이 가능하고, 한글로 제공되야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즉 ‘KANOJO’와 같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경우에도 한글화가 적용되지 않은 외국 콘텐츠라면 심의 대상에서 제외돼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구조다.

결국 해외 무등록 콘텐츠가 국내에 유통되다보니 한국의 제작사나 퍼블리싱업체(해외 VR 콘텐츠를 국내로 수입해 배급하는 업체)의 경우에도 굳이 등급심의제도를 준수해야할 필요성이 없다. 등급심의제도가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에게 적용될 경우 역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등급심사를 하기 위해 한글 번역과 투여되는 재원, 시간에 대해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일부 VR콘텐츠 제작사들은 등급심의를 회피하고 스팀을 통해 공급한다.

정부가 나서 이를 제재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또 VR콘텐츠와 관련해 한국 시장은 스팀 전체에서 봤을때 미비한 수준이다.

◆“심의등록 지킬 국내 유통 플랫폼 필요”

지난 6월 8일 밸브가 자사의 글로벌 게임플랫폼 스팀의 규제를 철폐하고 모든 게임의 등록을 허가하도록 정책을 변경했다. 일부에서는 무분별한 게임 등록으로 인해 스팀 플랫폼 내 게임의 평균 수준 하락을 우려했다.

결국 그동안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로 인해 서비스를 못하거나 일부 콘텐츠를 삭제해야 했던 게임이 모두 자유롭게 서비스됐다.

당시 밸브 관계자는 “게임에 대해 규제를 할 경우 선정성과 폭력 외에도 정치, 인종 차별, 정체성 등 모든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뤄야 한다”며 “이러한 주제는 국가와 지역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해석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직원 사이에서도 많은 혼란이 있었다”고 방침을 세운 배경을 설명했다.

결국 모든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정부가 스팀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앞서 언급한 무등록 VR콘텐츠가 범람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
서울 신촌에 위치한 도심형 VR 테마파크 브라이트를 찾은 시민들이 VR 게임을 체험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스팀은 개인과 상업적 이용 라이센스를 구분해 제공하고 있다. 스팀에서 이렇게 콘텐츠를 상업적으로 팔기 위해 필요한 것은 월 5만원의 이용료 뿐이다. 스팀은 콘텐츠를 제공할때 어떠한 등급심사나 제재를 위하 필요한 이용자의 신상정보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한국 지사가 있는 구글플레이나 페이스북, 앱스토어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자체적으로 심의를 통해 게임의 등급을 메기고 있지만, 스팀은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고 한국 지사가 없다.

콘텐츠의 개발만큼 중요한 플랫폼 사업자가 외국에 있다보니 국내 정부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KOVACA의 관계자는 “대부분의 VR콘텐츠가 유통되는 스팀을 통해 아무런 제재 없이 무등록 콘텐츠가 국내 이용자들에게 유입되고 있다”며 “VR 콘텐츠에 대한 정확한 심의를 통해 무등록 VR 콘텐츠가 양상되는 일이 없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