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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대신 후진양성… '시니어법관'도 관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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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이상훈·이인복·민일영 전 대법관, 변호사 개업 대신 사법연수원 교수 선택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전직 대법관들의 ‘살신성인’에 박수
올 1월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박보영 전 대법관이 고향(전남 순천)에서 가까운 전남 여수시법원 판사 근무를 희망한 것으로 전해지며 법조계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일부 젊은 법관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제기하며 실추된 대법원의 이미지가 전직 대법관의 ‘살신성인’ 덕분에 다시 좋아졌다는 평이다. 박 전 대법관의 시·군법원 판사 지망을 계기로 최근 5년간 퇴임한 전직 대법관들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올 1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퇴임식을 마친 박보영 전 대법관이 동료 및 선후배 판사와 법원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보영 "고향 옆 작은 법원에서 판사 근무 희망"

박 전 대법관은 현재 모교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그리고 법조인을 양성하는 대법원 산하 사법연수원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런 그가 최근 법원행정처에 “전남 여수시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박 전 대법관이 근무를 희망한 시·군법원은 지방법원 또는 지원이 설치되지 않은 소도시나 군 단위 농어촌을 관할한다. 소송액 2000만원 미만 소액사건처럼 서민 생활과 밀접한 사건이 대부분이다. 대법관 같은 최고위급 판사 출신이 시·군법원 판사를 지망한 것은 사법사상 박 전 대법관이 첫번째 사례다.

법원 관계자는 “박 전 대법관의 시·군법원 판사 임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관 임명은 대법원 법관인사위원회와 대법원장 및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 출신인 박 전 대법관은 전주여고,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16기)을 수료 뒤 판사,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1월 김영란, 전수안 전 대법관에 이어 여성으로는 3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전직 대법관들, ‘변호사’ 대신 ‘교수’로 후학 양성

다른 전직 대법관들은 어떨까. 올 1월 박 전 대법관과 함께 퇴임한 김용덕 전 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장 겸임)은 현재 변호사 등 활동을 하지 않고 심신을 재충전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퇴임한 이상훈 전 대법관, 2016년 9월 물러난 이인복 전 대법관, 2015년 9월 퇴직한 민일영 전 대법관 3명은 박 전 대법관과 나란히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를 맡아 후진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하는 업무는 ‘연구 및 특별강의’로 지정돼 있다. 이인복 전 대법관의 경우 지난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1차 진상조사단장을 맡아 공정하고 꼼꼼한 조사 끝에 ‘행정처에 비판적인 판사들한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는 결과를 내놓아 법원 안팎에서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6월 퇴임한 박병대 전 대법관은 성균관대, 2014년 9월 물러난 양창수 전 대법관은 한양대에서 나란히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5년 2월 물러난 신영철 전 대법관은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3월 퇴직한 차한성 전 대법관의 경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 동시에 태평양이 공익활동을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 동천 이사장까지 함께 맡아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변호사업계, "전관예우 근절 도움" 환영 목소리

대법원은 시·군법원이 처음 생긴 1995년부터 법관 출신 변호사 등을 시·군법원 판사로 임용해왔다. 지난해 2월부터는 법원장 등을 지낸 고위법관 중 희망자에 한해 ‘원로법관’을 뽑아 시·군법원 재판을 맡기고 있다.

이번에 박보영 전 대법관의 선택을 두고서 법조계는 ‘전직 대법관이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가 돼 거액의 수임료를 챙길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란 입장이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박 전 대법관 같은 원로법관이 늘면 전관예우를 깰 수 있고, 풍부한 경험을 활용해 국민에게 고품질의 재판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를 계기로 현행 원로법관 제도를 ‘정원 외 시간제 법관제도’를 표방한 ‘시니어판사’ 제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모성준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 등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시니어판사란 법원 퇴직 후 법관으로 재임용된 60세 이상의 판사들에 대해 시간제 형태로 근무하게 하는 제도를 뜻한다.

미국의 경우 시니어법관은 65세 이상의 연방판사가 법관 신분을 유지하면서 재판 업무와 사법부 자문, 외부 봉사활동 등을 맡는다. 미국 최초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도 은퇴 후 시니어법관으로 활동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