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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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차별 맞선 양심의 외침

이일하 감독 다큐 ‘카운터스’
‘우리는 조선인을 죽이러 왔다. 조선인은 바퀴벌레다. 한국 여자를 보면 돌을 던지거나 강간해도 무방하다….’

2013년 2월, 한국 음식점이 밀집한 일본 도쿄 신오쿠보에 이런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있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가 중심이 된 혐한 시위대였다. 이들은 한국인을 일본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외치며 도를 넘은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거리에서 이를 목격한 한국 상인, 유학생, 관광객들은 공포감에 얼어붙거나 눈물만 흘렸다.

혐한 시위가 확산하자 그에 맞선 ‘카운터’ 운동이 등장했다. SNS에서 시작된 카운터 운동은 혐오와 차별에 맞선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조직적 대응을 이끌어냈다. 카운터스들은 혐오시위에 맞선 적극적인 혐오반대 시위를 통해 혐오시위의 확산을 막아내고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극우성향인 아베 정권에서 일본 최초로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끌었다.

영화 ‘카운터스’는 2013년부터 일본에 확산한 혐한 시위에 혐오와 차별 반대 시위로 맞선 카운터 운동과 그 주역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카운터스’는 일본의 전설적인 시민운동이 된 카운터 운동 주역들의 활약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2000년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일하 감독이 혐한 시위와 카운터 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이를 기록했다. 영화는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캐릭터의 면면과 생각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 풍경과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극적인 재미를 준다.

특히 카운터 운동을 처음 제창한 노마나, 법 제정을 끌어낸 아리타 의원이 아닌 야쿠자 출신 다카하시의 활동에 집중한다. 다카하시는 약자에게 혐오와 차별 발언을 쏟아내는 혐오시위대를 목격한 뒤 환멸을 느꼈고, 그에 맞서는 카운터스에 감화돼 카운터 운동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시위대 최전선에서 몸으로 혐오시위를 막아내는 그룹 오토코구미를 조직했다. 이들의 ‘과격한’ 활약으로 카운터 운동은 널리 알려지게 됐고, 혐한 시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풀었다. 몸에 용 문신을 하고 위협적인 구호를 외치는 다카하시와 오토코구미 대원들이 재특회 창설자 사쿠라이가 이끄는 혐오시위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한 긴장감과 액션의 쾌감도 준다.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현재 여성과 남성, 외국인, 난민 등을 향한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절대 가볍지 않다. 15일 개봉.

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