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추상미는 4년 전 우연히 접한 폴란드의 북한 고아 이야기에 빠지게 됐다.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2년 동안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2016년 인터뷰를 위해 폴란드로 떠났던 그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먼저 들고 찾아왔다.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추 감독을 만났다.
“원래는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죠. 하지만 폴란드에서 양육원 선생님들을 만난 뒤 지금 이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감독으로 관객을 찾는 추상미는 “자신들의 상처로 같은 상처를 가진 북한 고아들을 보듬은 폴란드 양육교사들의 진심을 접하고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
프와코비체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양육원이었다. 폴란드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형제의 나라’에서 온 전쟁고아들을 위해 양질의 식사와 의료, 교육을 제공했다. 교사를 비롯해 요리사, 청소부, 의사 등 직원만 600여명에 달했다. 특히 그중 절반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족을 잃거나 고아가 된 빈민 출신이었고, 갓 교사 자격증을 딴 열정적인 20, 30대 청년들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들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북한 고아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큐 ‘폴란드로 간 아이들’ |
1959년, 희귀병으로 숨진 여자아이 김귀덕을 제외한 아이들 전원이 북한으로 송환됐다.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저는 언젠가 꼭 폴란드에 다시 가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폴란드어를 중얼거립니다. 계속 편지 쓸게요. 마마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2년 뒤 북한에서 오던 편지는 일제히 끊겼다. 폴란드 양육교사들은 더는 아이들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영화 말미 유제프 보로비에츠 당시 양육원 원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추 감독은 “이 말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2009년 드라마 이후 연기활동이 뜸했고, 두 차례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그사이 육아에 집중하며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그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모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성’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정의’는 자칫 사람을 메마르게 할 수 있지만, 모성이나 연민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거든요. 이 사회에 그런 마음이 많이 녹아들어 서로를 보듬기를 바라서, 저는 앞으로도 모성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게 될 것 같네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31일 개봉한다. 이를 토대로 한 극영화 ‘그루터기들’은 이르면 내년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