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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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레이더 공세에 軍 영상 맞불…대치 심화되나 [박수찬의 軍]

지난달 21일 일본 측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레이더 논란’이 한일 관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일본은 우리 해군 함정이 같은달 20일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인근 상공을 날던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에 사격통제(화기관제)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본은 방위성과 외무성, 자민당에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여론몰이를 했다. 같은달 28일에는 P-1 초계기가 촬영한 당시 영상을 공개했다. 우리 정부도 2일 일본의 위협적 저공비행에 대한 사과 요구, 4일 일본 주장을 반박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일 외교장관이 4일 전화통화를 갖고 양국 국방당국 간 협의를 통해 이견을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지만, 외교당국이 나서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봉합 대신 여론전이 지속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방부가 4일 한일 '레이더 갈등'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사진은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모습(위)이다. 잠시 후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아래, 노란 원)가 보인다. 연합뉴스
◆한일 ‘동영상 싸움’…여론 전쟁 본격화

레이더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정치쟁점화를 시도해온 일본은 지난달 28일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한국 해군 함정에 의한 화기관제(사격통제) 레이더 조사 사안’이라는 13분7초짜리 영상을 공개했다. 같은달 20일 P-1 초계기가 촬영한 화면으로 승무원들의 목소리와 방위성이 제작한 자막이 들어있다.

영상에서는 P-1 초계기 승무원들이 “한국 해군이 전파를 발사하고 있다” “화기관제레이더(Fire Control) 탐지했다” “함포가 겨냥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라며 구조작전중인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경비함 삼봉호 주위를 저공으로 맴돌았다. 영어로 “한국 해군, 화기 레이더 안테나가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걸 식별했다. 의도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장면도 나온다.

같은달 27일 국방부 간 화상회의가 열린 다음날 일본이 영상 공개를 단행하자 국방부도 1주일만에 반박 영상에 한글과 영어 자막을 붙여 공개했다. 지난 3일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P-1 초계기의 저공비행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지 하루 만이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초계기가 찍은 영상을 28일 공개했다. 일본 방위성 캡쳐
4분26초 분량의 영상에서 국방부는 “일본은 인도주의적 구조활동 중이었던 우리 함정을 향해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제시했다.

영상에서는 구조작전 도중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낮은 고도로 접근하는 모습과 탈진한 북한 주민에게 따뜻한 물을 줘야 한다는 해경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국방부는 영상에서 “초계기가 광개토대왕함 상공 150m, 거리 500m까지 접근해 함정 승조원들이 소음과 진동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저공비행을 하지 않았다”는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면서 P-1 초계기가 위협비행을 실시해 구조활동을 방해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일본측 영상에 따르면 P-1 초계기는 “사격통제(화기관제)레이더 안테나가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식별했다. 의도가 무엇인가”라고 광개토대왕함에 문의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공개한 광개토대왕함의 수신 내용은 잡음이 심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군 관계자는 “무(無)소음 처리된 방에서 헤드셋을 끼고 반복 재생해도 내용파악이 쉽지 않다”며 “엔진음 등으로 실내가 시끄러운 함정에서는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격통제레이더(스티어:STIR)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국방부의 기존 입장도 반복됐다.

한국 해군 함정들이 4일 서해에서 실시된 해상기동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해군 제공
◆기싸움 또는 봉합 가능성

레이더 조준을 둘러싼 한일 간 논란은 일본이 영상을 공개했을 때부터 한국에 더 위협적인 상황이었다는 점이 부각됐다.

일본은 영상 공개를 전후로 국제민간항공협약 부속서에 근거해 P-1 초계기의 비행고도(150m)는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국제민간항공협약 부속서는 민항기 안전을 위한 비행규칙을 정한 것일 뿐 군용기는 적용하지 않는다”며 “무장한 군용기가 타국 군함에 저공 위협비행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서태평양 지역 해군이 2014년 합의한 공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 기준(CUES)을 위반했다는 일본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CUES는 공해상에서 접촉한 미확인 상대에게 사격용 레이더 조준 등의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CUSE는 함정 인근에서의 항공기 곡예비행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이 국제법을 ‘내로남불’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부가 해경이 찍은 P-1 초계기 저공비행 모습과 잡음이 뒤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측 통신 내용을 공개하면서 양국 국방부 간 사실 확인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양측이 합의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영상을 공개한 상황에서 기존 주장을 철회하거나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면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유지에 타격을 받게 된다. 여론의 반발 등 국내 정치적 후폭풍도 감당해야 한다. 한일 외교장관이 4일 전화통화에서 양국 국방당국 간 협의를 통한 해결방안에 공감한 것을 놓고 외교적 해법 대신 진실 공방이 지속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 때리기’는 정치적 의도가 짙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도쿄=AFP 연합뉴스
애매한 형태로 봉합될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지난달 28일 영상 공개 이후 한국에 대한 비난 수위가 낮아졌다. 이달 들어 일본 언론에서 레이더 문제는 등장하지 않고 있으며, 영상 공개를 방위성에 지시한 아베 총리도 재발방지책 요구에 그치고 있다.

이같은 행태는 ‘한국 때리기’를 통한 정권 지지층 결집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우방국 군대로 한순간에 적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서 군사력 증강의 명분을 얻고, 정치적 지지자들을 모으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상황에서 여론전을 지속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국방부의 영상 공개나 사과 요구가 ‘뒷북치기’가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아베 정권이 레이더 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여론전을 하지 않을 경우 양국 국방부 간 실무협의를 통한 사실 관계 확인은 일본 P-1 초계기가 수신한 레이더 주파수 정보 공개나 광개토대왕함이 촬영한 P-1 초계기 영상 등 군사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한 흐지부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아베 정권의 ‘한국 때리기’가 안보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전략 수립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베 정권이 국내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흔들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일 관계를 흔들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고 연구해 실행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