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이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선언 이후 북한은 핵실험장만 파괴했을 뿐, 최근에는 핵무기 폐기 의지마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 논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한 것은 ‘조선반도 비핵화’였지, 북한의 비핵화는 아니었다고 강변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철폐를 통한 핵우산 제거라는 의미로, 김일성 주석 시대부터 주장해온 그야말로 ‘선대의 유훈’이다. 2019년 신년사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보유국으로서 시험, 제조, 확산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 시에도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비핵화’(FFVD)는 언급조차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우려해 왔듯이 북한의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의 대가로 경제 발전을 하고자 한다면 미국에 대규모 경제원조를 요구해야 할 것인데, 북·미 관계 개선, 종전선언, 평화체제와 같은 대남전략 요소만 거론하고 있지 않은가.
박휘락 국민대 교수·국제정치학 |
이에 남북관계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전략을 수정해 북한의 비핵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구축된 남북 대화채널을 총 가동해 비핵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싫어하는 말과 조건으로 압박을 해서라도 북한을 비핵화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이 없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부 내 대북 전문가들이 고심해야 할 긴급과제이다.
외교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재정립도 병행돼야 한다. 북핵이라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외교는 우방과의 관계를 계속 악화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대북 문제 해결을 위한 대미 공조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미국의 경제제재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위한 방위비분담 문제도 적시에 제대로 타결하지 못해 동맹의 근본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에 대한 불만이 미국이 북한과 ‘나쁜 거래’에 합의하는 구실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과도 사사건건 감정적으로 대립함으로써 한·미·일 정책협의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 미국과 접촉하기 이전에 중국을 방문해 우방을 공고하게 다지는 북한의 행보와 대비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안보 상황에 대한 낙관적 평가보다 비관적 평가를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후자에 대비하다가 전자가 되면 상관없지만, 그 반대일 경우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 한·미동맹, 한·일 관계 모두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대응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방위비 분담 문제를 조기에 타결함으로써 한·미동맹을 확고하게 하고, 일본과도 감정다툼에서 벗어나 안보협력 문제를 협의해 나가야 한다. 북핵에 대한 억제와 방어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1970년대 남베트남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북핵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결하라고 국민이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휘락 국민대 교수·국제정치학